기도원에서 들은 신앙 간증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2월 10일(화) 15:30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 당시 청와대에 파견 나가 모시던 실장님이 순국하신 후 오산리기도원의 금식기도회에 일주일 참석했다. 내 바로 옆에 자리한 분은 월남전 맹호부대 태권도 교관 출신으로 다소 우락부락한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순수한 인상을 주는 분이었다.

사흘이 지난 저녁 집회 후 김 사범이 나에게 들려 준 신안간증이 퍽 감동적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연모하던 여인과 결혼하여 꿈 같은 신혼생활을 지낸 지 6개월 만에 아내가 갑자기 뇌암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수일 만에 죽게 되자 생의 의욕을 잃고 매일 술로 살다 싶이 인생을 허송했다고 한다.

하루는 왕십리 공사판에 십장으로 있는 친구를 만나 술이나 진탕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아침 9시쯤 공사장을 찾아 갔는데 그 친구가 마침 일이 있어 출근이 늦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인근 술집에 가서 아침부터 폭음을 하고 다시 공사장으로 갔더니 경찰이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수갑을 채워 성동경찰서로 연행했다는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그날 아침 공사장에서 측량기가 없어져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두하여 인부들을 취조 중 아침 9시쯤 수상한 사람이 공사장을 배회했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범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소재 파악 중에 본인이 술에 만취돼 공사장에 나타나자 무작정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압송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호소해도 통하지 않고 홧김에 '차라리 죽어버리자' 작심하고 식음을 전폐한 지 일 주일쯤 지난 후 김 사범이 법정에 서기도 전에 죽으면 책임 문제가 나올까 봐 경찰이 링거주사를 놓고 억지로 입을 벌려 음식을 투입하기도 하면서 2주쯤 지나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2주를 굶었으니 앉아 있을 기력도 없고 비몽사몽 간에 검사나 판사가 무슨 말을 물으면 다짜고짜 고개를 위아래로 끄떡인 결과 모든 것을 시인한 것으로 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수감된 다음 날부터 어느 죄수가 매일 오후 같은 시간에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와서 공손히 인사하고 한 쪽 구석에 서서 무슨 노래를 부르는 데 김 사범이 버럭 소리를 질러도 이 죄수는 매일 똑같은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공손히 인사하고 나가는 일이 사흘 간 계속됐다고 한다. 나흘 째 되는 날 그 죄수가 문을 열고 들어 오자마자 김 사범이 또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동료 수감자가 "저 분한테 그러면 안 되지요. 저분은 내주에 사형집행을 받게 되어 있어요"하더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김 사범은 쇠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고 다음날부터 그 죄수의 노래를 경청하게 되었는 데 어딘지 모르게 전에 없이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가 있었더란다.

며칠 후 측량기를 흠친 범인이 잡히자 김 사범은 무죄석방되어 택시를 타고 여동생 집으로 갔더니 행방불명 되었던 오빠가 나타났다고 온 식구들을 불러 잔치판을 벌였는 데 김 사범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일어서다가 음식을 다 토해내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거의 3주를 식음을 전폐하다 싶이 했기 때문에 식도가 말라붙어 위까지 음식을 전달할 수 없을 만큼 소화기능이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식구들이 상의 끝에 어차피 죽을 바에야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면서 편히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김 사범을 기도원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김 사범은 생전 교회에 나간 적도 없고 기도도 찬송도 해본 일도 없고 아는 것은 오로지 찬송가 94장 뿐이므로 그 찬송만 부르며 며칠을 지내던 중 하루는 기도원 전도사님께 부탁 드려 독방토굴에 들어가 기도하는 허락을 받고 "예수님, 저 좀 살려 주셔유. 주님 밖에 없구먼유. 꼭 좀 도와주셔유"를 하루 종일 반복하고, 94장 찬송을 부르면서 사흘을 간절히 매달렸다고 한다. 그 며칠 후 하루는 공중 기도실에서 기도하다 잠이 들었는 데 꿈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살려주마" 말씀하실 때 뜨거운 열기가 식도에서 위장으로 훑어 내리면서 온 몸이 편안해 지면서 두 뺨에 하염 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잠에서 깨어 보니 20여 명의 신도들이 자신을 지켜 보는 가운데 대형 타올 너 댓 개가 땀에 흠뻑 젖어 여기저기 널려 있더란다. 순간 심한 공복을 느낀 김 사범은 단 숨에 식당까지 달려가 밥 두 그릇을 순식 간에 먹고 기도원으로 돌아 오면서 자신이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 기도원에 들어 왔던 중환자가 아니었던가 생각이 떠오르면서 주님께서 생명을 구해 주신 생각을 하며 감사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기도원에 남아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김 사범의 기도를 응답하신 것이 결코 기도의 내용이 수준이 높아서도 아니고, 인품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죽자 살자 매달리는 순수한 믿음 때문임을 깨닫게 되면서 기도에 대한 나 자신의 콤플렉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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