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의 모임, KNH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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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0일(화) 15:19

1973년 가을 어느 날 노무라 목사는 김진홍 전도사의 전화를 받고 급히 한국에 왔다(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2014. 10. 9 이메일 면담). 아침 일찍 하네다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노무라 목사는 2시간 후 한국에 올 때 탔던 바로 그 비행기로 도쿄의 집으로 돌아갔다. 독일에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김진홍 전도사와 활빈교회 지도자들의 부탁 때문이었다. 70만 엔, 2천 달러 정도의 경비는 무명의 독립 복음 전도자였던 그에게 만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하네다공항에서 독일까지 할인 항공권 제도도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로마서 4장 17절에 의지하여 독일 행을 결심했다. 노무라 목사는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았다. 그렇게 마련된 경비로 1973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독일 듀이스버그(Duisburg)로 갔다. 그곳에는 KNH 본부가 있었다.

KNH, '킨더노트힐페(Kindernothilfe; children need help)는 비정부구호단체로 1959년에 칼 보른만(K. Bornmann)에 의해 설립됐다. 이 단체의 시작은 사실 1956년 '프랑크프루트 교회의 날(Frankfruter Kirchentag)' 폐회예배 설교였다.(작은자복지선교 20년사, 124) 니뮐러 박사(Dr. Niemoller)는 마태복음 25장 40절을 읽고, 굶주림과 가난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개발도상국가를 향한 독일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강조했다. 교회 회계로 봉사하던 보른만은 매월 십일조를 기아극복을 위해 헌납하기로 결심했다. 부자도 아니었고, 부양가족도 5명이나 됐지만 그는 친구들을 설득하여 1957년 헌금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 구입비로 인도에 보냈다. 1959년에는 아동후원단체인 KNH를 설립했다(한아협 사업자료 지침서, 1983, 1~3). 이 단체의 헌장(constitution KNH, para 2, 1)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공동체의 디아코니아적 선교사명 완수를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 사는 가난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단체의 목적이었다(KNH, Proceedings of the Consultation, 1983, 2~6). 그래서 KNH는 성별, 민족, 신앙 등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궁핍하여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라면 누구든지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1959년 첫해 5명이었던 후원아동이 1974년경에는 2만 8000여 명이나 됐다.

청계천 움막에서 예수의 얼굴을 보고 청계천을 위해 헌신하던 노무라 목사는 KNH 본부 사무실에서 장로 한 사람을 소개 받았다. 그는 노무라 목사가 들고 있던 라이카 카메라 제조회사 중역이었다. 노무라 목사의 카메라에는 청계천과 활빈교회 지역 상황이 담겨있었다. 라이카 직원들은 사진을 현상하며 참상을 안타까워했다. 노무라 목사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슬라이드를 보여 줬고, 통역을 통해 청계천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탁아소 설립과 운영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노무라 목사는 그들이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것 같아 크게 실망한 채 귀국했다. 그러나 KNH 관계자들은 당시 우리나라 자료를 깊이 숙고하고 한국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하게 형성된 도시 빈민들의 자녀들이 빈곤 때문에 적절한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작은자복지선교회 20년사, 2). 그래서 1974년부터 우리나라 청계천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 후원으로 김진홍 전도사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고, 교사들의 월급을 줄 수 있게 되었다(김진홍 목사 면담, 2014. 5. 29).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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