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인 보화, 진주, 물고기 비유

[ 성서마당 ]

차정식 교수
2015년 02월 10일(화) 15:02

차정식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여기에 세 가지 연쇄 비유가 천국에 빗대어 제시되고 있지만 강조하는 메시지의 초점은 상이해 보인다. 먼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비유는 그야말로 발견의 기쁨 자체를 천국의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시킨다.

가만히 이 비유의 행간을 뜯어보면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소작농이다. 남의 땅을 부쳐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이 농부는 어느 날 땅을 파다 얻은 보물로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다.

이내 그는 보물을 품은 그 밭의 가치를 알아보고 제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고야 만다. 우리 삶은 이런 예기치 않은 발견의 은총으로 넘실거린다. 다만 그 잠재된 보화를 발견하려는 꾸준한 일상의 노동이 지속되느냐 여부, 그리고 그 삶이란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는 안목이 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한편 진주 상인의 비유는 예기치 않은 보물이 아니라 '좋은 진주'라는 사전 목표를 분명히 한다. 당시 보석상들 중에는 멀리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이런 진주를 구입하는 자들이 있었다. 물론 진주 찾아 삼만 리의 그 여정에는 숱한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다. 산과 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등이 그것이다. 또 고생 끝에 그 장소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 값진 진주가 조금 전에 다른 사람에게 팔릴 수도 있다. 그 모든 불확실한 변수를 무릅쓰고 떠나는 여정은 곧 모험으로서의 생에 내포된 낙관적 가능성을 전제한다. 좌절의 위험과 희망의 가능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삶이라는 무대가 바로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실험되고 추구되고 구현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바다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그중에서 좋은 것과 못된 것을 선별해 버리고 취한다는 비유는 어떤가. 이것은 예기치 않은 발견도 아니고, 아득한 목표를 향한 모험과도 좀 다른, 일상 속에 예견할 만한 노동의 결실이 그 배경이다. 그중에서도 우열의 가치를 분별할 만한 안목을 가지고 좋은 쪽에 집중하는 판별과 선택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생사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노력을 한다. 좋은 걸 취하고 나쁜 걸 버리는 선택의 연속이 바로 인생길에 지속된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가 '천국' 비유인 까닭은 바로 그 여정의 끝에 우리 인생 전반을 두고 최후의 심판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천국'(또는 '하나님 나라')은 영혼만이 떠다니는 것처럼 상상되는 하늘의 내세천당 개념과 다르다. 그것은 왕 되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 땅의 우리 삶에 개입하는 전반적 양상을 포괄하는 메타포다. 그것은 발견하고 선택하고 모험하고 쟁취해야 할 무엇이다. 그러나 그 천국의 쟁취는 타인과의 무한경쟁 속에서 추구하는 배타적 독점의 이득과 무관하다. 그것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과 싸우면서 얻게 되는 보편적 선물의 가능성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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