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눈 속의 '나'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장순애 교수
2015년 02월 09일(월) 19:50

중국의 한족(漢族)교회에서 어린이용 성경공부 교재를 만드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일년정도 가르칠 내용들을 각 단원과 과로 구성하고, 집필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한족 교사들이 한족 어린이들에게 가르칠 자료였으므로 한족의 문화와 표현이 잘 담기도록 하기위해  한족  원로  집필자뿐  아니라 한족 어린이들도 몇 명 워크숍에 참여시켰다. 그들이 정한 단원들 중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요'라는 내용이 담긴 단원의 제목은 '하나님 눈 속의 나'였다. '하나님 눈 속의 나'라는 이 제목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으로 받아주시고, 언제나 애틋하게 보고 계신다는 그 구체적 사랑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우리를 보시고 당신의 눈에 담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시작된다. 길을 따라 걸으시던 예수님께 보이는 것, 볼 수 있는 것, 아주 많았을 터이지만 우리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보셨다'(요 9:1) 또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여리고를 지나가시던 예수께서는 어느 한 나무 아래 이르셨을 때 그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쳐다 보셨다'(눅19:5) 그런가하면 그는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보셨고'(마9:9) 갈릴리 해변을  지나시다가  바다에  그물던지던  시몬과  베드로를,  배에서  그물을  깁던  야고보와  요한을 '보셨다'(막1:16,19). 또한 예수께서는 자기에게로 나오는 큰 무리를 '보셨다'(요6:5).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누군가를 보실 때마다, 예수께서 그 눈 속에 담아주신 자마다, 그 인생에 놀라운 변화들이 생겨났다. 배고픈 무리들은 배부르게 되었고, 외로운 이는 자기 집에 놀러와 함께 밥먹는 친구를 얻었으며, 물고기를 낚던 이들은 사람을 낚는 이들이 되었고, 날 때부터 눈멀었던 이는 보게되었으며, 세관에 앉아있던 이는 하늘나라 왕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복음서의 저자가 되었다. 이 놀라운 모든 변화는 예수께서 행하신 능력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능력은 예수께서 약한 나, 굶주린 나, 아픈 나, 외로운 나, 죄인인 나, 허무한 나를 외면하지 않고 '보시고', 그 눈 속에 우리를 담으실 때 시작되었다.

출근길, 신호에 걸렸을 때 한 건물벽에 걸린 시화(詩畵) 현수막을 보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였다. 현수막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그 미소가 이내 흐르는 눈물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자세히 봐주시고, 오래 봐주시면서, '예쁘다', '사랑스럽다'고 해주신 사랑의 주님이 아침햇살에 걸린 현수막 속에서 웃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교회학교 교사들, 우리들은 사실 대부분 풀꽃과도 같은 별 것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연약하고 볼품 없고 시시한 우리들에게도 '자세히 보시고, 오래 보시면서 이쁘다! 사랑스럽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그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교회학교 교사인 '너도' 아이들을 자세히 보렴, 오래 보렴, 그들이 얼마나 예쁜지,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가능하면 교회학교를 오래하는 교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일학년때 만난 교회학교 '담임쌤'이 아이들을 '예수님의 눈'으로 오래오래 보면서, 자세히 보면서, "이쁘다! 사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안아주면 정말 좋겠다.

장순애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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