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2월 9~1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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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5일(목) 10:13

월-내가 달려갈 사명
본문 : 행 20:22~25
찬송 : 452장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막 사는 사람이다. 다음으로 자기 이익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안 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셋째, 사명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사명에 따라 살고 사명에 따라 죽는 사람이다. 세상에서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알고 성실히 사는 사람이다. 우리 가정의 일도 하나님의 일이고, 직장의 일도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의 일도 하나님의 일이다.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는 일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가지고 평생을 사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구원을 이루고 생명을 건지려는 뜻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대속의 죽음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이 하신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두 번째 사명은, 성령에 매임 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바울의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역사에 매이면 사명이 분명해진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환경이 좋으면 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핍박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불렀다면 복음을 위해 죽어도 상관없다는 자세이다. 우리들의 심령 속에도 불타오르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기를 바란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주 예수께 매인 바 되시기 바란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세 번째 사명은, 주님께 목숨을 거는 사람들로 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자기를 온전히 드렸다. 그러기에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소중한 자신을 주님의 소유로 드리며 힘에 지나도록 수고했다. 있는 힘을 모두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네 번째 사명은, 주를 본 받아 섬기는 일로 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시고 동시에 섬기는 일을 하셨다. 주님의 섬김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섬김이었다. 사도 바울은 우리와 같이 한 평생을 살았지만 참으로 값있는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살다가 십자가를 지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눈에 존귀한 사람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사명을 기억하고 복음을 퍼뜨리기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형제 목사
오병이어교회


화-이것이 인생이다
본문 : 창 35:16~21
찬송 : 95장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본문에는 야곱이 사랑했던 둘째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는 장면이 나온다. 라헬이 그토록 원했던 아들을 얻었지만 정작 라헬 본인이 죽게 된다. 이것이 인생이다.
 
첫째,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가 야곱의 삶을 보면 문제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보게 된다. 얍복강에서 야곱이 기도함으로 형 에서와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이번에는 외동딸 디나가 세겜성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니 라헬이 출산을 하다가 죽게 된다. 문제가 끊임없이 계속된다.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복이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에 우리 인생이 문제 때문에 죽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도, 능력도, 믿음도 주셨다. 우리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욕심이 우리에게 고난을 더하게 한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은 많이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다. 그러기에 라헬은 자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니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런 라헬을 긍휼히 여기셔서 요셉을 주셨다. 라헬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요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요셉은 '여호와는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라헬의 욕심이었다. 요셉을 얻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결국 라헬은 욕심대로 두 번째 아들을 얻었지만 출산하다가 죽게 된다. 욕심이 우리에게 고난을 더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다르게 자연세계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꾸만 채우려하고 가지려고 하고 자꾸만 욕심을 부리다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
 
셋째, 삶이 어렵고 문제가 많아도 해석을 잘 해야 한다.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요셉은 자신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석했기에 형들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석하면 내가 승리하게 된다. 믿음으로 해석하면 용서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부족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해서 망하는 것도 아니다. 해석을 잘못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해석하면 어떠한 문제라도 이길 수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삶의 문제가 가득하지만 욕심을 내려놓음으로 문제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소서.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해석함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병원 목사
강남교회


수-천국을 소유하고 위로받기
본문 : 마 5:3~4
찬송 : 427장

예수님의 팔복은 산상수훈의 현관이다. 그리고 산상수훈은 십계명 해설이다. 우리가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산상수훈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팔복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그 은혜를 느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팔복은 잘 지어진 정형시로 헬라어로 보면 제1복에서 제4복까지 36단어, 제5복에서 제8복까지 36단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앞의 것을 1연이라 하고 뒤의 것을 2연이라 하는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본디 십계명이 두 개의 에머랄드 판에 기록된 이유와 같다. 1연을 태도로, 2연을 행동으로 팔복을 이해하면 수월하다. 예수님은 오순절에 모세에게 십계명 판을 새겨주신 하나님의 심정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 산상수훈을 반포하시면서 팔복으로 주위를 환기시켜 주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다. 성경은 가난하면 가난하다고 하지 심령이 가난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첫 번째 복에서 예수님은 구태여 심령이란 말을 붙여 넣으셨다. 여기서 심령은 전인격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헬라어 프뉴마의 히브리 원어인 네페쉬의 참 뜻이다. 부자가 천국을 소유하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자가 무조건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전인격적인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로는 하나님의 위로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런 위로의 복을 받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애통하는 자다. 애통이란 자기의 원통함에 대해 힘겨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깨졌기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불의와 부조리에 대하여 아파하는 것이 바로 애통이다. 구약성경은 고아와 과부와 외국인(나그네)을 구제 즉 쩨다카의 대상으로 말한다. 아들은 사회적 복지 또는 사회적 보장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왜 생겨났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애통이다.
 
전인격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다. 그리고 애통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말씀하신다. 'With God'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소유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으며 애착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아픈 마음을 갖는다. 그래서 내 소유 가운데 가난한 자들의 몫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따라 가서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사회적 기반이 없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에 천국을 맛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위로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성계 목사
모든이교회


목-하나님께만 경배하면
본문 : 마 4:8~11
찬송 : 80장

경배란 존경하며 겸손히 절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존경하며 그 분 앞에 늘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그분 앞에 겸손할 때만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 보람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실패하고 낙망하고 방황하며 헤매이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모르고 그 하나님께 경배하며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 때에 우리에게 어떠한 큰 유익이 있는지 나누고자 한다.
 
첫째로 이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헛된 영광과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살게 된다.
 
이 세계 최대의 광활한 영토와 최대의 강국이 되기를 원했던 징기스칸, 나폴레옹, 알렉산더도 세월과 역사 앞에 다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헛수고 하지 않고 오늘 나에게 주신 것에 만족하며 보람있게 행복하게 겸손하게 살 수 있다. 세상의 영광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마음에 간직하며 세계와 인류를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날마다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세 제자와 함께 따로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들 앞에서 변화되셨는데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처럼 변화 될 수 있다. 윤리와 도덕을 파괴시키는 자가 아니요 잘 세워나가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정치, 종교, 교육, 가정의 위계질서가 파괴되어가는 이때에 이 세상에 세우신 모든 질서에 순응하며 살게 된다. 해같이 빛나는 얼굴로, 웃음으로, 미소로, 친절로 이 세상을 밝게 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갑니다. 어두움, 범죄, 중독, 무질서, 혼돈, 폭력의 검은 죄악으로부터 해방되어 사람들이 자유함을 얻어 살 수 있도록 구원의 길로 인도해 준다.
 
셋째로 대접받는 자가 아닌 모든 사람을 대접하는 자로 이 세상을 섬기며 살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잘 대접 받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가정에서도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직장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누구를 섬기고 대접하고 사랑할 것인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우리가 아우성치는 세상의 소리에 대답해 줄 수 있다. 예수님의 섬김이, 예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용서함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최고로 경배하면서 이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을 최고로 대접해 주신다. 또한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 존귀한 자로 인정해 주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이 세상을 최고로 섬기며 최고로 대접하며 살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할 때에 폭력과 무질서의 죄악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 예수로 충만한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순희 목사
세종반석교회


금-우리는 꿈 꾸고 하나님은 일하신다
본문 : 창 37:5~11
찬송 : 488장

우리는 지금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본문의 요셉이 살 때는 더 어려웠다. 우리가 어려운 현실 탓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분명 어렵지만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 않은가? 필자의 교회는 캐치프레이즈로 "We dream, God works 우리는 꿈을 꾸고 하나님은 일하신다"를 삼고 꿈을 꾸고 늘 기도한다.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꿈을 품으니 기쁨이 넘치고, 소망을 말하게 되니 얼굴이 환해지고 행복해진다. 이왕에 꿈을 가질려면 하나님이 일 하시도록 큰 꿈을 가져야 한다. 작은 꿈은 피를 끓게 하지 못한다. 꿈은 소년에게는 시를 쓰게 하고 장년에게는 에너지를 공급하며 노년에게는 젊음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많은 위대한 종들이 꿈의 양식을 먹고 수많은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고 인생의 위대한 목표를 성취하고 달성했다. 마틴루터 킹 목사님은 "오늘도 내일도 곤란은 첩첩이 쌓여있다. 그러나 나는 꿈을 갖는다. 언젠가는 미시시피 주까지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하리라고, 나는 꿈을 갖는다. 나의 사남매가 색깔로가 아니라 인격의 내용으로 판단되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꿈을 갖는다. 남쪽 앨라배마 주에서도 검고 흰 아이들의 손이 정답게 뭉쳐지리라고. 이 꿈만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망의 동산에서 희망의 반석을 캐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꿈만 놓치지 않는다면 미국 내에 가득 차 있는 불협화음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심포니로 변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꿈을 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우리 가정에 꿈이 없는 식구가 있다면, 꿈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꿈은 소생케 하는 힘이 있다. 불행한 자에게 소생의 빛을 주고 슬픈 자에게 즐거운 내일을 속삭이게 한다. 그러기에 소망을 가지고 살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오늘 본문의 '꿈꾸는 요셉'은 무려 13년 동안 역경과 환난을 통하여 꿈을 먹고 살았다. 모든 고초와 역경이 비전 속에서 극복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꿈이 그 생애 속에 이루어지고야 만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슴에 품고 꿈을 먹고 살아가면 그 꿈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그 꿈이 새로운 삶을 가져다준다.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은 사람들은 모두 다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배후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살아가자. 어느 사이에 우리의 꿈은 현실로 다가와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괴로울 때도 , 슬플 때도 , 좋을 때도 꿈을 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은수 목사
열린교회


토-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본문 : 벧후 3:8~13
찬송 : 95장

사람은 '사람'이라 하는 분류에서는 동일하지만 "어떠한 사람이냐"라는 질문 앞에서는 모두가 같지는 않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는 하나님의 질문과 권면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모두가 어떠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첫째,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약속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모든 사람이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고…"라고 했다(9절).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천 년같이 천 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며 기다리신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의 정의를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했다. 사랑은 오래참자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결코 인간의 의지로 되어지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이러한 것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아름다운 특성이 드러난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보면 17절~21절까지 '아버지'라는 단어가 11번 나온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야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참고…' 탕자의 아버지에게 오늘 말씀을 적용하면 일치한다. 사람은 사랑을 만나야 부드러워진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을 때 눈물이 생기고 날카롭고 거친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
 
둘째, 경건한 생활을 잘 하도록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절 이하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다. 또 14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다.
 
이 말씀들은 영에 속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셋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 다른 조건이나 상황 때문이 아닌 주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기뻐했다. 우리 속에 기쁨이 넘침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 어떠한 상황에 처하여도 주님 나라를 바라보며 기여할 수 있는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며 경건한 삶과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훈 목사
금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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