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순절의 색다른 금식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목사
2015년 01월 26일(월) 19:20

과거 '첫 번째 고난주일'이라고 불렸던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부터는 금식을 비롯한 엄격한 경건훈련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때 우리에게는 생소한 색다른 금식이 시작되는데, 중세 초기부터 실행되던 소위 '눈의 금식'이라는 것이다. 부활절 전까지 약 2주간 계속되는 이 금식은 흰색이나 보라색 천으로 예배실의 십자가, 제단, 벽화, 다양한 이미지들을 덮어서 볼 수 없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중세 초기, 출교를 당했던 사람들이 사순절에 교회로 돌아와 공적인 회개를 시작할 때 온 회중들도 그들과 함께 참여하기 위해 화려했던 중세 예배당을 수수하게 꾸몄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천 위에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관련된 그림들을 그려서 금식하는 사람들의 기도와 묵상에 도움을 주려고 하였는데, 이 때 사용된 천을 '금식 천(Hunger Cloth)'라고 불렀다.


이 예배전통은 10-11세기경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크게 발전하였다가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점점 사라지다가 16세기 말에는 거의 사라졌거나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겨우 보존되었었다. 이미 시들해지던 전통이었지만 종교개혁자 루터도 천을 덮었다 벗기는 이 행위를 '속임수'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제 2바티칸 예배개혁 전후로 이 '눈의 금식' 전통은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 그리고 루터교 등에서 다시 활발하게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독일 가톨릭이나 루터교에서 가장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는 전통인데, 그 배경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1970년대 독일 가톨릭 교회가 '금식 천'에 등장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인도나 아프리카와 같이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 모습으로 그려서 서구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독일 가톨릭 교인들은 물론 루터교 교인들도 이 특이한 '금식 천'을 통해 지구촌의 기아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금식천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구제에 힘쓰며 사순절 영성을 키웠던 것이다. 사순절의 의의를 봉사를 통해 찾으려는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또한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금식천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아주 오랜 전통이 현대의 새로운 의의와 상징을 가지고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사순절을 준비하는 한국 교회들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하고 있다. '눈의 금식'이나 '금식 천'의 중세 전통을 그대로 회복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자체만을 묵상하는 것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그 궁극적 의의를 말해주지 못해 외면 받을 수 있기에, 반드시 봉사의 영성으로 이어져야 함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순절 영성훈련도 그 내용과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이타적 영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김명실 목사 / 장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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