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무 되기 싫어요"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장순애 교수
2015년 01월 26일(월) 19:05

주말마다 어린 두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교회 유치부를 섬기는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는 주일 밤, 아이들은 그 날 있었던 일 중 나름 인상적인 것들을 경쟁하듯 말한단다. 어느 주일엔가 큰 아이가 "엄마, 예수님은 포도나무래요. 우리는 가지래요. 예수님께 꼭 붙어있어야 한대요. 그래야 열매를 많이 맺는대요. 안 그러면 죽는대요." 그날 유치부에서 들은 성경 이야기를 이렇게 완벽하게 엄마에게 들려주는 아들이 정말 대견하더란다. 흐뭇한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근데, 엄마~ 난 나무 되기 싫어요. 난 나무 안될거예요"라고 속삭였단다. 순간 그 목사님은 멘붕. '뭐지? 이 결과는? 내가 가르친 유치부 아이들도 이런 걱정을 하고 있나?' 생각하니 매우 부끄럽고 혼란스럽더란다.

사실 교회학교 교사인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전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이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그저 습관적 혹은 의례적으로 전한 지식정보를 확인하는 수준, 예컨대 "예수님은 ○○○○? 우리는 ○○?" 같은 질문을 해놓고, "포도나무!, 가지!"라는 단답형 답이 나오면 "참 잘했어요. 우리 모두 예수님께 꼭 붙어서 많은 열매 맺기로해요"라는 맺음말로 설교 혹은 성경공부를 마치곤 한다.

내용적으로 볼 때 크게 틀린 것 없는 교수(敎授)이다. 그러나 가르침의 결과 학습자 속에는 지적 정보 알갱이들만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학습자들은 배운 내용 자체보다는 배운 내용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정서적 반응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 아이는 엄마를 만나자마자 왜 그렇게 서둘러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혹시 하루종일 걱정했던 건 아닐까? 예수님 나무에 꼭 붙어서 열매 많이 맺는 나무, 자기는 나무가 되고 싶지 않은데 나무가 될까봐….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때 '지적인 만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만남'이다. 특히 논리적인 방식보다는 직관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세상을 경험해가며 그 경험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 성경말씀과의 관계,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가족, 친구와의 관계 등 이른바 신앙과 삶을 형성해가는 유아들에게 있어서 '정서적 차원'의 만남과 학습은 특히 중요하다. 유아들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으로 인해 더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때이다. 따라서 유아, 유치부의 교육은 유아들로 하여금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좋아하도록 돕는 교육이 돼야 한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좋아하도록 하려면 유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쉬우면서도 중요한 두 가지를 제안한다. 그 첫째는 포도나무 이야기나 네가지 마음밭의 이야기, 토기장이 이야기처럼 '상징'과 '비유'로 이루어진 많은 설명이 요구되는 이야기보다는 예수님의 눈빛, 말투, 사랑, 능력이 직접 드러나는 예수님! 바로 그분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는 것이다. 그 둘째는 그 말씀을 전하는 교사의 표정, 그 말씀을 함께 듣는 교사의 태도에 예수님과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과 감동이 듬뿍! 진정으로! 가득 담겨있는 것이다.

장순애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