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불편한 진실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곽군용 목사
2015년 01월 22일(목) 11:50

 
1990년대 후반, 필자가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 우리 교단 선교사 한 분이 킨샤사에 파송받아 왔다. 50대 초반의 선교사였다. 이미 콩고에서 사역하던 필자는 이분의 정착을 돕기 위해 그와 교제하며 함께 여러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고, 거주할 집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장기체류를 위해 선교사 비자를 신청해 주려고 해도, 그는 원하지 않았다. 석달이 지났을까? 미국에 목회 자리가 났다며 그는 떠나버렸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분은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단독목회를 하다가 교인들과 문제가 생겨, 당회로부터 사임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교회가 후원하는 조건으로 총회 파송 콩고 선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16년 동안 현장에서 뛰었던 선교사로서 필자는, 한국에서 단독목회를 하다가 교회에서 문제가 생겨 선교사로 밀려 나온 분들, 대형교회에서 오랜 부목사 생활을 하다 교회의 압력에 밀려 마지못해 선교사로 나온 분들을 보기도 하고 그들에 대해 듣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는 물론, 늦게나마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발견해 열정적으로 선교사역을 아름답게 감당하는 선교사들도 있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나온 선교사들로 인해 선교현장이 어지럽혀진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교인수가 감소되는 상황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선교사 후원부터 줄여가거나 중단하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도, "선교사들 중에 '진짜 선교사'를 구별해서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옛날처럼 순수한 소명감과 복음의 열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평신도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선교사 불신 시대에 깊이 들어와 있다. 불편한 진실일 뿐이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고난의 때는 주님이 환란의 바람을 보내 교회 안에 있는 쭉정이와 가라지들을 골라내는 시기였다. 선교사 불신의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선교 소명이 분명하고, 복음의 열정과 실력을 갖춘 선교사들을 선택하고 훈련하고 파송하고 후원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단독목회 임지 마련책으로, 혹은 부목사를 내보내는 방편으로, 아니면 노회 안에서의 갈등과 마찰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차원에서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지를 망치게 두어서는 안된다. 평신도들이 말하는 '진짜 선교사들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선교사들도 노력해야 한다. 특별히 자신들의 선교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특별히 '돈선교(money mission)' 전략 - 이미 서구선교사들이 실패 후 폐기처분한 이 전략을 중단해야 한다. 현지인들 중 똑똑한 아이들이 선교사에게 와서 한 두 번씩 예배드려주면, 선교사들은 인재를 키운다는 미명하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혹은 매월 2-3백불 씩만 후원하면 교회 1개를 개척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전략이, 후원하는 지역교회들 속에서는 선교사 불신을 더 심화시키고, 현지인들에게는 한국 선교사를 돈이 들어오는 통로나 '봉'쯤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자신의 실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 특별히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해, 전도 한번 나가보지 못하고, 현지어로 설교하기 힘들어, 매월 생활비를 지원하면서 대리 목회시키거나, 현지교단과의 대등한 관계로 협력사역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빨리 타개해야한다. 물론 직접 선교가 금지되어있는 나라에서는 예외이다.
 
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고, 예산이 감소 될수록, 교회 지도자들은 더 해외 선교 후원에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수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제3세계 오지에 나가 복음과 주님을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선교사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란다.

곽군용 목사/양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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