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1월 19~2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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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5일(목) 13:50

월-등대의 등불을 항상 켜둘지니라
본문 : 출 27:20~21
찬송 : 175장

우리가 빛된 생활을 하려면 두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하나는 등이고 다른 하나는 기름이다. 그렇다면 등과 기름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
 
첫째, 등대는 정금 한 덩이로 쳐서 만들어야 했다.
 
이 등대에는 좌우로 세 개씩 등잔을 배치하여 불을 켜게 되어 있었다. 이 등대는 일곱 개의 등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메노라'고 부른다. 등대와 등잔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두들겨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등대와 등잔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리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난은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고난은 우리의 용도를 바꾸어 가는 것이다. 우리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순간 두들김을 당하는 것이다. 가정 문제, 재정문제로 날마다 두들김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등대와 등잔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부인하게 되고, 십자가를 지게 되고, 주를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뜻 없는 고난은 없다. 치고 두들겨 등대와 등잔이 완성되면 찬란한 빛을 비치는 도구가 된다.
 
둘째, 불을 켜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한다.
 
기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름은 감람나무 열매를 으깨 짜서 만든 것이다. 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기름을 상징하는 성령을 부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으깨지셔야 했다. 우리도 으깨져야 기름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빛을 발하기 위해 심지가 필요하다.
 
심지는 성도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 좋은 심지가 되려면 기름을 잘 흡수해야 한다. 만일 심지가 기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면 심지는 타버릴 것이고 금방 빛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름을 잘 흡수하는 심지는 성령을 사모하는 심령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태워 소진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성령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능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넷째, 등대의 불은 꺼지지 않도록 매일 간검해야 한다.
 
간검하다 정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라크'는 '다루다', '준비하다', '공급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 이는 등불을 켜고 끄는 것은 물론 기름을 끊이지 않게 항상 채워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빛된 생활을 하려면 내안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성령의 기름을 계속 채워야 한다. 빛은 생명체를 자라나게 하는 힘이 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다. 빛은 인도하는 것이다. 부모가 등대가 되어 등불을 가정에서 밝힌다면 자녀들은 생명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가정에 등대의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매일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일규 목사
신봉중앙교회


화-하나님을 바라보라
본문 : 욥 1:13~22
찬송 : 321장

갑작스런 사고, 부도, 묻지 마 폭행, 환난, 재앙, 지진, 질병, 죽음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온다. 주어진 현실이 무거워 탈진하기도 하고, 크게 낙심해서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죄를 지었으니까 벌을 받는다는 주위의 시선이다. 재앙이란 항상 연이어 온다는 화불단행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욥에게 15절에서 스바 사람이, 16절에서 하나님의 불이, 17절에서 갈대아 사람이, 19절에서 돌풍이 겹쳐서 오며 욥의 소유와 자녀들을 삼켜버렸다. 뜻밖의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분노가 외부로 표출되면 원망으로, 내부로 표출되면 자학이나 자포자기로 나타나는데, 욥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 가능할까?
 
20절에서 욥은 상상을 초월하는 네 가지 연쇄적인 재앙을 겪고 나서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자신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버린다. 그러면서도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는 믿음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는 욥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요,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고백한다. 욥은 더 나아가 자신의 신앙고백에서 '여호와'를 세 차례나 사용함으로써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 욥은 하나님 앞에 넋두리를 하지만 기본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입술로 범죄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사탄은 물러간다.
 
우리 가정은 어떠한가? 고난이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믿음으로 원망에서 벗어나 용기와 믿음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빚어진다. 고난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눈을 뜨게 된다. 욥의 경건은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일편단심으로 모든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는 참으로 순전하고 정직한 경건이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기도를 드리자. 고통과 고난 가운데 신뢰와 평안의 성숙한 믿음을 누리자. 문제를 앞에 두고 찬양하는 것은 주가 이기셨다는 승리의 선언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인생의 고난들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실 목사
부천교회


수-진영을 갖추고 행진하는 교회
본문 : 민 2:1~9
찬송 : 360장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40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그들은 광야 40년 세월을 텐트에서 보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텐트를 가리켜서 성막이라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텐트를 장막이라고 했다. 그 텐트가 모여 있던 곳은 진영(Camp)이다. 이 광야의 진영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장막은 우리의 인생이요, 진영은 교회를 말한다.
 
바울은 우리의 육신을 장막 집에 비유했다. 장막은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나홀로 훌륭한 신앙인이 될 수는 없다. 성도는 교회를 중심으로 예배하고 교제를 나누면서 함께 더불어 신앙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의 진영은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한다.
 
진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적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광야에서 뿔뿔히 흩어져 있으면 적에게 패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영을 조직하여 적들을 대항할 수 있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와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 아래에 있다.
 
셋째, 이스라엘의 진영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교훈한다.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영이 배치되어 있다. 이 성막 중심의 진영 조직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신앙과 삶의 중심에 항상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성막이 진영의 중앙에 자리 잡음으로써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삶을 교훈하고 있다.  
 
넷째,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영에 있을 때나 행진할 때에도 고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단정한 생각, 정돈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분명하고 확실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각자의 직분, 직책, 직임을 잘 수행할 때 교회는 질서를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다.
 
행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우리 주님께서 앞서 가신다. 새해에는 진영을 갖추고 약속의 땅으로 행진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새해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진영을 새롭게 하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원곤 목사
영해교회


목-염려하지 말자
본문 : 마 6:25~32
찬송 : 588장

우리는 삶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며 보낸다. 별 영양가도 없고, 도움이 안 되는 일에 팔려 인생이라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염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믿음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님은 염려가 우리 믿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염려함으로 키를 더할 수 없다"고 하셨다. 영어성경은 "인생의 한 시간을 보태줄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염려는 우리의 소망을 흐리게 한다. 믿음의 삶을 거꾸러뜨린다. 염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적인 생각에서 오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이 염려를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우리의 가슴과 머리 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근심과 희망의 믿음은 똑같은 머리, 같은 가슴에서 나온다. 염려와 희망의 자리가 전혀 다른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근심과 희망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크다.
 
"근심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고, 희망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기대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마음을 믿음의 생각, 긍정적 생각으로 가득 채울 때 우리는 희망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오늘 우리가 입고 먹을 것이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내일 먹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게 된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큰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 안에서 희망으로 내일을 보게 된다.
 
둘째, 잠시 눈을 돌려 이 세상의 이치를 바라보자
 
예수님은 염려속에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들의 백합화,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두 개의 동사 '보라' '생각하라'를 사용하신다.
 
백합화와 공중의 새는 자신들의 돌봄없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잘 보존되어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가꾸시고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들의 백합화보다 하늘 아버지는 너희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하물며 너희들을 돌보시고 가꾸시지 않겠느냐? 내일을 염려하지 말아라.”
 
그럼에도 여전히 근심과 염려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광야의 학교로 보내져야 한다. 광야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백합화와 새들은 끊임없는 염려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크게 꾸짖을 것이다. 광야의 학교에서 예수님의 꾸짖음도 듣게 될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주셨다. 근심과 염려로 우리의 인생을 도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실 것을 확신하며, 더 큰 믿음으로 달려가자. 2015년이 더 풍성해 지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염려하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근기 목사
큰기쁨교회


금-우리 가까이에 늘 계신 분
본문 : 요 14:16~21
찬송 : 187장

오늘은 성령에 대한 말씀이다. 성령강림절도 아닌데 성령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싶은 것은 새로운 해를 시작하고 주님의 뜻과 말씀으로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움과 힘든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이가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자는 성령에 대해서 삼위 하나님이라 부르는 '성부 성자 성령' 가운데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분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실체는 있으나 어떤 분인지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참 오해도 많고 성서에서 보여주는 그분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기 입맛에 따라 단정하기가 쉬운 분이 성령이다.
 
어떤 신학자는 성령을 어두운 방을 비추는 등잔불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깜깜한 방을 생각해 보자. 피아노도 있고, 책상도 있고, 예쁜 꽃병도 있다. 그러나 어두운 탓에 그 어느 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그 곳에 등잔불을 비추면 모든 것이 다 환하게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성령이 바로 이와 같다.
 
성령이라는 등불을 밝히면 창조주 하나님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가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인해 모든 만물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솜씨를 느끼고,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아주 평범하고도 평범하지 않은 신앙의 참된 가치를 아는 삶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되면 희미한 것들을 밝히 알고 진리를 구별하고, 참 된 길을 걸을 수 있는 분별력과 그 삶을 지속해 낼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15년을 시작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곳 하나도 분명하지 않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앞으로 삶이 어떠할지 불안하고 힘겨워 보여 자꾸만 조급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이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때로는 우리의 고민과 갈등을 들어주시고 때로는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 주시고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진리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실 것이다.
 
모든 희미한 것을 밝혀주시고, 더욱 확실한 것에 거하는 믿음으로 진리를 행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한 2015년, 성령과 함께 시작한 한 해는 그 어떤 날보다도 더 빛나고 열매 있는 해가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과 함께 새해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그 모든 일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의신 목사
광주다일교회


토-감사의 능력
본문 : 시 50:13~23
찬송 : 301장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 첫째는 유월절이요. 그 다음으로는 맥추절이요, 세 번째는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인 후에 지키는 수장절(추수절)이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 감사절의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620년에 영국에서 신앙의 억눌림 속에 살던 청교도들 102명이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역경과 모진 풍랑을 헤쳐 가며 황무지에 도착했으나 그 누구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찾은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면서 그 이듬해에농사를 지었다. 그러는 동안에 102명 가운데 배고픔과, 질병에 못 이겨서 죽어간 사람이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은 낙심치 아니하고 투지와 신앙을 가지고 한 해를 지냈다. 그들은 거두어들인 곡식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감사절을 지켰다. 그것을 후에 국가의 명절로 지키게 된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고, 사람의 마음도, 우리의 어떠한 환경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감사는 부정적인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항상 원망, 불평, 오해, 시기, 질투를 하는 부정적인 사람은 곧 마귀의 시험에 든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긍정적인 사람만이 은혜 충만한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의 자세에 따라서 부정적일 때에는 근심 걱정이 가실 날이 없고, 반대로 긍정적일 때에는 한없이 기쁘고 감사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긍정적인 사람은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가 있는 것이요, 제 아무리 넉넉하고 남부럽지 않게 가진 것이 있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사람은 근심, 걱정, 원망, 불평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혀 쇠고랑을 찼다. 그러나 그는 감사의 기도와 찬미를 드렸다. 그러자 옥 터가 흔들리고 쇠고랑이 끊어져 나가고 닫혔던 옥문까지도 저절로 열렸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힘이 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분명히 감사할 조건을 더 가져다 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원락 목사
목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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