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기원, 공동체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joohj@kic.ac.kr
2015년 01월 09일(금) 10:45


가족ㆍ공동체, 건강한 삶의 중요 요소
 
가족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존재의 기원(origin)이다. 가족에 대해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가정은 나의 대지다. 나는 거기서 정신적인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 이경남 차장knlee@pckworld.com

 
특히 사는 게 힘들고 지칠 때면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안식처인 가정은 배로 치면 모항(母港)이요, 등반으로 치면 베이스캠프(base camp)와도 같다. 많은 연구에서, 병에서 회복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가족이라는 지지 체계(support system)가 필수임을 강조하고 있다.
 
몇 년 전 에이즈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족이 있느냐, 없느냐'가 감염인의 질병 치료와 재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절감했다. 가족에게서 지지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감염인은 투병을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와 가족 모두 투병에서 가장 큰 힘은 가족이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소중한 그 이름, 가족'이었다.
 
노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노숙자가 우리와 다른 점은 의지의 부족이나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바로 가족 같은 든든한 지지 체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쉽게 노숙자가 되었고, 거기에서 헤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보았다. 가족은 난관을 헤쳐 나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반면에 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가족이 발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원천이 되는 경우 또한 종종 경험했다. 즉 건강을 위한 지지 체계가 꼭 '가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로제토 효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로제토(Roseto)란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생활 터전을 잡은 후 그들 출신지의 이름을 따서 붙인 마을 이름이다. 이 지역 이민자들의 심장병 사망하는 비율은 물론 중독자나 치매 발생률도 현저히 낮았다. 비결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고된 생활 속에서도 서로 존경하고 협조하면서 긴밀한 유대를 이루고 사는 일종의 공동체 즉 '확장된 가족 집단'이었다. 게다가 로제토 지역의 범죄율은 제로였고 대학 진학률도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았다. 이웃 간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삶의 여러 영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최근 들어 결혼 연령도 점점 늦어지고 혼자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세태를 보면서, 앞으로는 병나면 과연 누가 병간호를 해주려나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가정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존중하는 로제토와 같은 사회공동체가 많아져서 친구나 이웃이 가족처럼 사랑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면 개인과 사회는 더욱 건강해지지 않을까?

주혜주 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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