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의 헛기침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유석균 목사
2015년 01월 05일(월) 18:00

어릴 적 이맘때가 되면 거의 온 식구가 기침을 했다. 어떤 때는 돌아가면서 어떤 때는 한꺼번에. 특히 어머니가 기침을 할 때에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의사가 되려는 꿈을 갖기도 했다. 기침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고마운 기침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은 아마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약 28년 전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에 처음 부임하였을 때, 한 분의 장로님이 계셨다. 장로님은 몸이 불편하셔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고 천식과 전립선염으로 고생을 하셨다. 그렇지만 신문을 읽으시면 첫 장 첫 글자부터 마지막 장 마지막 글자까지 읽으시는 세밀하신 분이셨고, 아는 것이 많으셨다. 그 장로님에 대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장로님의 헛기침'이다.

당시 교회는 90년의 역사를 맞았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큰 진통을 겪고 있었다. 바로 그런 교회에 부임을 한 것은 목사 안수를 받은 지 겨우 두 달, 그것도 33살 된 그야말로 뭐가 뭔지 모르는 애송이 목사가 갑작스럽게 타의에 의해서였다. 뭐를 제대로 알았겠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부족한 것밖에 없던 목회에 결정적인 실수가 그만 드러나고 말았다.

첫 번째 맞는 신년 첫 주일에 제직을 임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임명 받은 자들로 첫 제직회가 모이게 되었다. 막 제직회 개회를 선포하자 마자 어느 집사 한 분이 손을 들더니 우리교회 집사 임명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세례도 받지 않은 사람이 집사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물론 안 되죠"라고 하자 그 집사님은 ○○○의 이름을 대며 따지듯 묻는 것이다. 저는 아찔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지명한 분은 제가 부임하였을 당시 예배생활, 봉사, 새벽기도회에도 빠지지 않는 분이었기에 당연히 세례교인인줄로 여겼던 것이다. 그분은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또 나의 실수로 교회가 혼란에 빠지게 될까 두려웠다. 바로 그 때에모든 것을 소신껏 하라고 어린 저에게 다 맡겨주신 장로님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해서- 그만 내가- 다 실수를 했노라"고 띄엄띄엄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실수는 내가 한 것인데. 그리고 비겁자 같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장로님! 그건 장로님께서 실수하신 것이 아니라 저의 실수였다"고 말씀을 드리려고 "장로님"의 '장'자가 입에서 나올라치면 장로님은 큰 소리로, 그것도 엄청 길게, 몸을 오그라뜨리며, 헛기침을 계속하시는 것이다. 일부러 저의 부르는 소리를 못들은 척 하시며, 나의 말을 막으시는 것이었다.

제직회는 그렇게 끝이 나고 장로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장로님께 물었다. "장로님 아까 왜 그렇게 하셨어요. 그건 장로님께서 실수하신 것이 아니라, 제가 실수한 것이잖아요."

바로 그때에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해 젊은 목사님을 잘 돕지 못해서 마음이 늘 아픈데 이런 것에라도 내가 욕을 먹어야지 목사님을 욕 듣게 할 수 없죠." 순간 저의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울컥 났다. 장로님의 그때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아픔이 있는 교회들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제발 헛기침 좀 하시라고.

나는 바로 그러한 장로님, 성도들로 인해 지금까지 이렇게 부족하고 실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29년째 섬겨오고 있다. 지켜 주고 세워줌으로 말이다. 스캇 펙 박사가 "사랑이란 억압하고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존재 영역이 넓어지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마치 안개꽃처럼 말이다.

유석균 목사  / 병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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