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선 평화학교

[ NGO칼럼 ] NGO칼럼

정지석 목사
2014년 12월 30일(화) 16:33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이 믿음이 국경선평화학교 운동을 출발시켰다.
'언제입니까, 곧 온다, 준비해라'.

펜들힐에서, 소이산에서 이 소리를 듣는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통일은 밀려오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사람이다. 남북한 평화통일 운동에 생을 걸고 일할 사람, 피스메이커를 준비하자. 2013년 3월 1일, 철원, 남북한 분단으로 남철원 북철원으로 갈라진 분단 마을에서 국경선평화학교(Border Peace School)는 출발했다.

학교는 민통선 안에 있다. 2011년 10월, 강원도가 남북한 통일시대를 준비하며 세워놓은 'DMZ평화문화광장' 준공식에 앉아서, 나는 이곳이 평화학교로 쓰여진다면 좋겠다 꿈을 꿨다. 어림없는 일 같지만 기도는 할 수 있는 것, 소이산에 오를 때마다 멀리 민통선 안 남방한계선 옆에 세워진 이 멋진 센터 건물을 평화학교로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평화학교 예비교실을 하면서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마련하고, 개교를 준비하고 있을 때 강원도청 DMZ 담당 공무원들이 찾아왔다. "DMZ 평화문화광장을 평화학교로 사용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몸에 전율이 왔다. '아,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아무 것이 없이, 사전 조사도, 준비도, 살 집도 없이, 오직 '가라'는 음성에 복종하는 마음으로 들어 온 철원에서 나는 땅 한조각도 없이 평화학교를 열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피스메이커를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맨손이었지만 두려움도 염려도 없었다. '이 일은 내 일이니 네가 염려할 거 없다'. 맨손이지만 늘 든든했다. 과연 그랬다. 최신식 멋진 건물, 그것도 남북한 분단의 현장 민통선 최전방 안에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평화학교를 얻게 되었으니, 감격이었다. 잔치상은 마련했는데 학생은 얼마나 올까? 열 명이면 감당할만한 시작이라 믿었다. 믿음대로 열 명이 왔다. 우리는 이들을 피스메이커 후보생이라 부른다. 평화학에서부터 평화 구호 봉사실천론, 영어 등 8개 분야를 3년 과정으로 공부한다. 매주 이틀, 우리는 군인 검문소를 지나 학교로 들어간다. 공부를 마치면 다시 군인 검문소를 거쳐 마을로 나온다. 이제는 검문소 군인들이 평화학교 사람들을 먼저 알아본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작년에 이어 올해 국경선평화학교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 중에는 외국인들도 있다. 한번은 팔레스타인 목사와 미국의 유태인 신학자가 함께 평화학교에 왔다. 방문객들이 오면 나는 국경선평화학교의 비전과 꿈을 이야기 한다. 나의 남북한 평화의 꿈 이야기를 들은 유태인 신학자는 말했다. '미친 상상(crazy imagination)'.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군 작전지역 안에서 평화의 꿈을 꾸는 모습이 도무지 제정신 같아 보이지 않았던가 보다. 그런데 왠일일까, 이 말이 듣기 좋은 것이. 서로 통함을 느껴졌다. '너도 마찬가지', 그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의 꿈을 꾸면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가담한 유태인이었다. 예수님도 미친 사람이라 하지 않았던가(막 3:21).

국경선평화학교, 취직의 보장도 없고, 평화통일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철원 최전방 산골 마을로 지금 제 발로 찾아 들어오는 미친 상상의 사람들이 있다.

정지석 목사 /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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