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원점에 서서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김운성 목사
2014년 12월 30일(화) 16:32

신앙이란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변치 않는 것만이 진리요, 진리만이 영원하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온 세상이 변질되는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요, 우리의 본성이 변질되는 것들에 더 쉽게 동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첫 타락도 그렇다. 하와는 이미 에덴동산에 있는 많은 과실들을 먹고 있었지만, 그것들로 만족하지 못하여 사탄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께서 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손을 뻗었고, 그로 인해 인류는 타락했다.

사람은 뭔가 새로운 것들을 접해보고 싶은 본능을 가진 것 같다.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권태를 느끼면서 한눈을 팔게 되는 것이라든지, 첫 출근하면서 감격하던 직장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마음 역시 그렇다. 신앙에 첫 눈을 떴던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을 하다가 급기야는 다른 교회를 옮겨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처음 걷던 길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듯이 보인다. 마치 아침저녁으로 늘 걷던 산책로에 싫증을 느껴 새로운 길로 접어든 사람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새로운 길이 우리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실상은 사람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해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말씀의 능력을 믿기보다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테크닉에 더 의존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복음을 말했지만, 복음은 포장지일 뿐 그 안에는 세속적 욕망을 채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자기 비움과 겸손의 모범을 말하면서도 속 깊은 곳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더 높이 서려는 욕망이 부글대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을 실천하기도 하지만, 그 사랑은 우러난 것이 아니라 기획된 냄새가 날 때도 많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자 한 사람의 가치를 알면서도 소자를 외면해 왔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처음 걷던 길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지금 우리는 점점 낭떠러지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을 시작하면서 다시 원점에 서길 원한다. 2천여 년 전 갈릴리로 돌아가 거기서 말씀하시고 병자들을 어루만지시던 예수님을 바라보길 원한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덧놓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예수님, 그리고 예루살렘을 보시며 흘리시던 그 눈물을 다시 주목하길 원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타고 흘러내리던 그 보혈이 얼마나 붉고 진한 사랑인가를 다시 느껴보길 원한다. 아울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생명의 능력을 가진 교회가 되길 원한다.

에베소교회는 첫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책망을 받았다. 이제 우리 그 첫 사랑의 원점에 다시 서길 원한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던 그 날로, 세례를 받던 그 날로, 직분을 받던 그 날로, 안수를 받고 임직하던 그 날로, 목회지에서 첫 설교를 하던 그 날로 돌아가 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 곁길로 나오라고 유혹하는 사탄을 뿌리치고, 오직 예수님만 향해 나아가길 원한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란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첫 사랑이 변치 않도록 살아보자. 2015년,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도록 하자.

김운성 목사 / 땅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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