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가 소통인가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joohj@kic.ac.kr
2014년 12월 24일(수) 16:06

 
정신과 용어 중에 신어조작증(neologism)이라는 게 있다. 두 가지 이상의 단어를 합쳐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을 만들어내는 증상이다. 물론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신어조작증이 심하면 단어와 문구를 지리멸렬하게 뒤섞는 말비빔(word salad)이라는 증상이 된다. 당연히 듣는 사람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신어조작증 증상은 비단 환자들에게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증상이 존재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별세계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될 만큼 신종언어 천지다. 젊은이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들이 불타는 금요일을 '불금'이라 하고 멘탈붕괴라는 합성어를 줄여서 멘붕이라 표현하는 것이 예사다.
 
신어조작증의 대가이면서 아예 그것을 생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개그맨이다. 그들이 만든 신조어는 금세 매스컴을 타고 대중들에게 확산되어 유행어가 된다. 일반인들이 매스컴을 통해 들은 개그맨들의 신조어를 일상 대화에서 두어 개 정도 섞어 쓰는 것은 이제 낯익은 일이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개그맨들이 사용한 단어를 적당히 사용해야 학생들과 적절히 교감할 수 있을 정도다. 개그맨 입장에서는 톡톡 튀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수록 폭발적인 인기를 거머쥐고 유명 연예인 반열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기발한 말을 만들어 내느라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환자 입장에서 보자면 증상을 만들어 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증상이라고 불리는 이상 행동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정신질환은 아니다. 환자들이 보이는 신어조작증이란 현실에서 유리된 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에 빠져 외부와의 적절한 교류가 안 되는 심리 상태가 말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빙상의 일각인 셈이다. 이와는 다르게 자신이 의식한 상태에서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의도적으로 사용하는지, 듣는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증상인가' 아니면 '대박을 터뜨려 인기가 치솟을 유행어인가'로 그 운명이 갈린다. 마치 함께 떨어진 빗방울이 백두산 꼭대기의 서쪽으로 떨어지면 압록강이 되고 동쪽으로 떨어지면 두만강이 되듯이!
 
개그맨 같은 특정 계층이나 소속의 사람을 넘어서 온 국민이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비단 자기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자폐적 사고에 뿌리를 둔 언어 사용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환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 신조어의 범람 속에 자칫 소통이 불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서로에게 익숙한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휴대전화와 같은 첨단 기기의 등장으로 예전보다 신속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각별히 신경 써야 하겠다.

주혜주 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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