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22~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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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7일(수) 14:22

월-천년을 하루같이
본문 : 벧후 3:8~13
찬송 : 364장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했다.
 
그렇지만 이 때의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말씀은 이후 제자들의 삶을 지배했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 들도 있느니라(막 9:1)"고 약속하신 그대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렸다.
 
초대교회의 최고의 관심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있었다. 고난과 핍박이 있어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참고 인내하면서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도들의 죽음, 성도들의 죽음은 초대교회를 당혹스럽게 했다.
 
오늘 말씀은 이런 교회 상황에서 주신 말씀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을 할 때에는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그러나 내가 관심 없는 것을 보거나, 시행할 때는 시간이 멈추어져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건강한 사람에게 있어서 세월은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질병이 있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같은 시간이지만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을 수 있다.
 
우리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야 한다. 특히 신앙생활이 그렇다. 예배와 기도, 교회를 봉사하면서 섬기는 것이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면 하루가 천년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시간은 천년이 하루 같을 것이다. 오늘 내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다.
 
주님을 기다리며 천년을 하루같이 사는 사람들은 행실이 거룩해야 한다. 그의 삶이 거룩해야 한다. 말과 마음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삶이 거룩해야 한다. 거룩은 하나님의 모습이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교회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경건해야 한다. 경건은 '아름답다'는 말과 '예배드리다'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천년을 하루같이 신앙생활하기 위해서 예배가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예배가 있어야 한다.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좋고 아름다운 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서 일하게 하심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큰 기쁨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휘동 목사
포항송도교회


화-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본문 : 골 3:5~11
찬송 : 85장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만든 트리와 장식들이 한달 전부터 거리의 상점과 서울시청 광장에까지 세워져 추운 겨울 밤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는 관대하나 그 죽으심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고 사실로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한 필연적 사건이지 성인의 탄생일 정도로 여겨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죽으려고 오셨다. 성탄절은 깊은 감사가 차고 넘치는 날이 되어야 마땅하다.
 
성 어거스틴은 회심을 한후에 30년 동안 "주님 당신은 누구시오며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기도만 했다고 한다. 우리는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살아가면서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주님을 잊는다. 모든 문제를 내가 끌어안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건, 사고를 만든다.
 
본문 10절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하셨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옷입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옷에 걸맞는 인격과 지식과 품격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종교철학 시험시간이었다. 시험문제는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에 대하여 논하라'였다. 그런데 한 학생은 팔장을 낀채 생각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시험관이 시험지를 제출하라고 독촉하자 그제서야 답을 써서 들고 나왔다. 시험지에는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다"라고 씌여 있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일화이다.
 
부끄러움의 종류가 다르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늘 부끄러운 십자가를 대할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된 자로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지식까지도 새로워져서 주님을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고 기쁨으로 가득찬 신령한 사람이 되자. 주님이 온 인류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시다. 그런분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내 생명의 주인이시다.
 
주님이 오신날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깊이 감사드리자. 그리고 아직 부끄러운 십자가를 대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자. 주님은 지금 이 시간도 그들을 키우시고자 권고하시고, 세우시며 열심히 일하신다. 만유가 되시고 만유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오늘의 기도
 
주님! 옛 사람을 벗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성숙한 주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남엽 목사
서대문구교경협 경목


수-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본문 : 딤전 6:10~12
찬송 : 218장

예전에는 '어느 양반 가문의 후손이냐, 누구의 자손이냐'라는 것이 중요했다. 오랜 전통과 권세 있는 집안의 후손이라 하면 어깨가 으쓱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분은 어느 집안의 후손인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오늘 본문에는 네 종류의 동사가 등장한다. 그 동사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는, '피하라'이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총 네 번 피하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음행을 피하라",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10절을 보면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피하라"고 말한다. 오늘날 돈이 개입되지 않은 범죄는 거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둘째는, '따르라'이다. 무엇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말씀한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돈 안 되는 것들을 열심히 따르라고 말이다. 의롭게 살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음으로 살며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인내함으로 꾹꾹 참아야 하며, 온유한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싸우라'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싸움을 하며 산다. 그런데 싸움에는 '페어플레이 정신'이라는 원칙이 있으며, 모든 운동경기에는 규칙이 있다. 마찬가지로 믿음에도 원칙이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신앙인들이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하는 모든 경기의 규칙은 '선'이라고 말씀한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믿음의 기본 원칙이다.
 
넷째는, '취하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공식을 만나게 된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세 가지가 결국, 이 네 번째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피할 것은 피하고, 따를 것만 따르고, 선으로 싸워 이기면 우리가 취하게 되는 선물이 영생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를 믿는 이유,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단 한 가지다. 영생이다. 그 영생의 길이 우리 눈앞에 있다며, 영생에 이르는 길을 명명백백하게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생의 길은 누구 눈에 보이는가? 제대로 분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쉽지 않은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거나 낙오하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를 원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종영 목사
가장제일교회


목-예수님을 만나면 된다
본문 : 눅 19:1~10
찬송 : 93장

말츠라는 심리학자는 95%의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약점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람들이란 약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약점을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학력의 약점 때문에 괴로워 하던 링컨이나, 소아마비의 결함을 가졌던 루즈벨트는 실력을 갖추어 대통령이 되었고, 가난의 약점을 가지고 있던 록 펠러는 세계 최대의 부를 이루었다. 청각장애란 약점을 가졌던 베토벤은 최대의 악성이 되었다. 문제는 약점이 아니라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큰 문제이다.
 
마라톤의 황제 아베베는 '맨발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달리기에서만은 그를 이길 자가 지구상에는 없다고 하던 그가 갑자기 관절염에 걸렸다. 그는 장애자가 되어 서울 장애자 올림픽에 참가했다. 달리기 선수가 다리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마치 미술가가 시력을 잃은 것과 같고, 음악가가 청력을 잃은 것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그의 선수 생애는 이제 끝났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장애인 마라톤 선수로 재기하여 세계인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본문의 삭개오가 괴로워하고 있는 약점이 바로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키가 작았고, 사회적 고독으로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환영 받지 못한 직업과 작은 키로 고민하는 삭개오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비정한 사회로부터의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7)"하며 적대시 하였다.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은 것처럼 삭개오는 여리고 사회와 어울려 지내지 못했다. 그러나 삭개오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삭개오는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키가 작다는 것과 또 하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때 발 앞에 돌무화과나무가 보였다. 순간 삭개오는 달려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난 그는 변화되었고 예수님은 구원 받았음을 선포하셨다.
 
우리는 삭개오처럼 직업 때문에, 신체적 장애 때문에, 가족 때문에, 사회적 따돌림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자. 고난이 유익이 될 수 있다. 화가 복이 될 수 있다. 나의 약점이 능력의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믿음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불행한 삶의 조건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자들이여,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바라보자.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옆을 지나가고 계신다. 예수님을 만나면 부끄러운 약점이 영광스런 장점으로 바뀐다.
 
오늘의 기도
 
나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 내 손을 잡아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주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연약한 나를 통하여 주님의 위대함과 거룩함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태익 목사
담양읍교회


금-성소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삶
본문 :시 134:1~3
찬송 : 338장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고, 소망이 넘치는 때다. 시편 134편은 시편 120편부터 시작되는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5편 중에 마지막 시편이다.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마음과 같다. 특히 시편 134편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대와 찬양을 담고 있다. 한밤에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주님의 종들을 향해 "주님을 송축하라"는 말로 시편은 시작된다.
 
주님의 집에 서 있는 모든 종들은 문자적인 의미와 더불어 영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문자 그대로 주님의 집을 밤새워 지키는 이들이 있다. 레위지파의 직무 중에 일부이다. 그들은 성전의 등불이 꺼질까,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기구와 성소가 훼손될까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밤은 늘 깨어있어서 뜬 눈으로 경각심 속에 지켜야 하는 때이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신앙의 각성 속에 어두운 세상 한 가운데를 지켜야 하는 이들이다.
 
새벽을 지키고, 성전을 돌보는 모든 마음들이 이와 같이 한밤에 성소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영적인 의미로 볼 때에 바로 이런 신앙의 자세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염원하며, 그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를 지키는 마음, 그 뜨거운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성소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 나아가 우리의 가정이, 직장과 사업장이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성소가 되는 것이다. 특별히 그 때가 캄캄한 한밤중 같을 때에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런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2절에서는 3가지로 우리에게 권고한다.
 
첫째는 성소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성소를 바라보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다. 야곱이 비록 이 땅의 것으로 돌베게를 삼고 잠을 자지만 그 이상은 천상에 잇닿아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하늘의 일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둘째는 우리의 손을 드는 것이다. 손을 드는 것은 이스라엘의 기도와 찬양의 자세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내 손을 들어 그분 앞에 우리 전 존재를 굴복시킨다. 하나님 주실 은총을 두 손을 들어 받아들인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손을 잡아주실 줄 믿는다. 셋째는 찬송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오직 한 분의 주인이신 주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것은 우리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의무이다.
 
오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찬송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뜻이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시인은 축복한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오늘의 기도
 
우리 마음이 하나님만 향하고 우리 손을 들어 주님을 높일 때 주님 영광을 받아주시고, 우리 삶에 간섭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인섭 목사
현저교회


토-귀하신 이름 예수
본문 : 마 1:21
찬송 : 85장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이름을 지을 때에는 오래 생각하고, 가문과 인격을 생각해서 이름을 짓는다. 그래서 이름은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으로 이름을 지었어도 바르게 살지 못하면, 오히려 이름이 더 더럽혀 진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부모가 지은 이름 말고 세상 사람들이 불러보지도 못하는 이름,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름을 알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세상의 모든 이름이 낳아주신 분이나 길러주신 분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며 어떻게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이름을 짓듯이 예수라는 이름도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시고 그 이름에 하나님의 뜻을 담으셨다.
 
하나님의 소망은 구원이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우리를 구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며 예수님을 불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구원 얻기 위해서 다른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 나라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분명하지 않으면 문을 열어줄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집을 들어갈 때도 인터넷상의 정보를 얻으려 해도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모르면 불가능하다. 세상의 그 어떤 이름에도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로마서 10장 13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한다. 천국 문을 여는 아이디가, 비밀번호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아이디를 주실 뿐 아니라, 천국 문을 열고 닫을 권세까지 주신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죽은 이름이 아니라 부르면 즉각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기억하여 '예수'이름의 능력을 믿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모시기를 바란다. 구원을 허락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많이 생각하고 불러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병경 목사
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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