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와 가짜 나 구별하기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joohj@kic.ac.kr
2014년 12월 17일(수) 11:14

 
평간호사로 근무하던 그해에는 유난히 연극을 많이 했다. '심청전'을 공연할 때의 일이다. 준비실에서 연극 준비를 돕고 있는데 연출자가 갑자기 뛰어들어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큰일 났어요. 뺑덕어멈 역이 펑크 났어요. 주 간호사님이 대신 뺑덕어멈 역을 하셔야겠어요."
 
뺑덕어멈 역을 맡은 여자 환자가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너무 불안해서 못 하겠다며 침대에 누워 꼼짝 않고 버텼기 때문이었다. 급작스런 사태에 당황했지만, 몸에 맞는 한복을 겨우 골라 입고 무대로 나가 순간의 재치와 애드리브로 가까스로 뺑덕어멈 역을 했고 연극은 무사히 끝났다.
 
정신과 환자들은 현실에서 관심을 거둬 들이고, 그 관심이 온통 자신의 내면세계에 고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연극은 다른 치료 활동처럼 환자들이 현실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자신이 맡은 역에 따른 대사를 외우고, 많은 시간 다른 역을 맡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세상을 한 편의 연극에, 우리 각자를 배우에 비유하면서 삶이라는 연극에서 주어진 배우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고대 그리스 연극 배우들은 가면을 썼는데 이것을 '페르소나'라고 했다. 이후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 요구에 맞춰서 얼굴에 쓰는 '가면'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페르소나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역할, 태도, 행동이 포함된다. 즉 주로 명함에 인쇄된 직함이나 호칭들이 바로 사회적 활동을 위한 페르소나다. 실제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여러 가면 즉 많은 페르소나를 사용하며,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외부에서 요구되는 페르소나와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면 진정한 자기에게서 멀어지고 따라서 정신건강이 위협을 받는다. 동일시가 심해서 페르소나와 자신이 분리되지 않으면 자기의 본모습을 모르는 병리적인 지경에까지 이른다. 즉 페르소나를 상황에 맞게 쓰고 벗을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람이다. 가면 쓴 가짜 자기와 그 뒤의 진짜 자기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정해진 각본이나 역할은 물론 연습도 없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어떠한 역할이 주어지든 주인공이 되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되, 집착하지도 매달리지도 마라"는 에픽테토스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혜주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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