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켜는 마음

[ 문화 ] 성탄 수필

은옥진 권사
2014년 12월 16일(화) 15:41

이맘때가 되면 깊숙이 넣어 둔 크리스마스장식품을 꺼낸다. 먼지를 털고 고리가 빠진 것은 수선을 하고 해어진 곳을 기워서 트리에 매달았다. 트리 장식은 끝마쳤을 때도 흐뭇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손질을 할 때도 마음이 설렌다. 해가 바뀌면서 새로운 장식품이 더해지기도 한다. 해마다 커나는 손자들이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동물형상이나 울긋불긋한 공모양의 소품들을 제 손이 닿는 트리 아래쪽에 조롱조롱 매달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사 온 장식품도 여럿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도자기에 채색된 아기예수와 동방박사 인형들, 외손녀 서영이가 밴쿠버에 있을 때 보내준 크리스털 천사. 핀란드 산타의 고향에서 아들이 들고 온 목각종과 새들. 사위가 출장길에 가져 온 마구간의 아기예수 모습은 손톱만큼 작아도 앙증하다. 금방이라도 포르르 날아갈 것 같은 비둘기 두 마리. 행여 바스러질까 비행시간 내내 가슴에 안고 오지 않았던가. 이십여 년이 지났으니 흰빛이 누리끼리해졌어도 아직은 트리 우듬지에서 반짝이는 별과 함께 날갯짓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우리 아이들 떡애기 때부터 써 왔던 몇 가지도 있다. 루돌프사슴과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며 벽에 걸어두던 울긋불긋한 커다란 털실양말. 빨간 헝겊에 '축 성탄'이라고 수놓아 방문마다 걸어두었는데. 비록 때 묻고 낡았지만 오십여 년 전 아이들의 유년시절이 한 켜 한 켜 얹혀있고, 내가 살아 온 세월이 배어 있어서 정겹기만 하다.

이렇게 지난날과 오늘이 어우러진 트리 앞에 서면 식구들 모두가 저마다의 추억들을 쏟아낸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이야기지만 그때마다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때 그 시간 속에 머무르게 된다.

   
▲ 일러스트 조안나

트리가 제법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촛대를 꺼내놓는다. 이런 저런 화사한 장식품들 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선물이다. 그 촛대에 담긴 사연을 풀어 나가려면 삼십년 전 어느 날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서교동교회에 김종렬 담임목사님이 계셨다. 오랫동안 독일 선교사로 있다가 우리교회로 부임해서 신학ㆍ문학ㆍ문화예술까지 아우르셨으니 성도들에게는 참으로 보기 드문 귀한 어른이셨다. 대림절을 지키고 대림절 촛불을 밝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느 날 갑자기 교회를 떠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사택으로 들렀던 저녁이었다. 거실 탁자 위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손잡이가 달린 토기접시 속에서 심지가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만 엉겁결에 "참 좋아요. 어느 토기장이가 만들었을까요?"라고 탄성을 쏟았다. 사모님은 두 말도 않고 '후!'하고 불을 끄고서, 그 촛대를 내게 주셨다. 그 후로 성탄절을 맞아 촛대를 꺼낼 때면 노상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려진다. 그렇게 독일에서 만들어 놓은 붉은 빛깔 촛농이 눌러 붙은 더껑이 채로,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

또 하나 애지중지하는 선물이 있다. 사기로 빚은 두 천사다. 애들 손가락 크기만 하다. 두 손을 가슴에 모두고 기도하는 모습의 그 천사들이 어떻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야겠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살고 있었으니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우리교회 명정애 권사님 댁에 들른 일이 있었다. 응접실 다탁위에 성탄절 장식품들이 놓여있었다. 권사님이 대한항공에 근무할 때여서 하늘을 누비고 다녔으니,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앙증스러운 두 천사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뻐라! 내가 가졌으면….' 나는 주인의 허락을 받을 사이도 없이 어느새 두 천사를 쥐고 있었다. 권사님은 그러한 나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래요. 가지세요."라며, 부드러운 종이를 찾아내서 두 천사를 겹겹으로 싸서 내 손에 들려주며, 예쁘게 쓰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두 천사가 우리 집으로 예인돼 왔었다.

내 가슴을덥혀주는 세 번째의 선물은 지금으로선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무형의 것이다. 여러해 전 암수술을 마치고 맞이한 성탄절 저녁이었다. 아들 딸 며느리들이 저녁을 차리느라 분주했고, 모처럼 만난 꼬마들은 성탄트리 밑에 놓인 선물 꾸러미가 궁금해서 시끌벅적 온통 수선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찾아 온 손님이 있었다. "권사님, 지가 왔어라우." 우리교회 선 권사님이 제법 묵직해 보이는 것을 내려놓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장갑도끼지  않은  그의  손이 찬바람에 얼부풀어서 얼음처럼 차디찼다. "시상에, 많이도 축 나셨네요 잉. 사골 푹 고앗응께요. 몸보신 하시시오." 생각지도 않은 그의 내방으로 어리둥절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혼자 손으로 하루하루 남의 일을 다니며 생활하는 분이 아닌가. 경기도에서 우리 집까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탔을까. 가슴이 짠했다.

해마다 성탄절이 오면 자신이 아끼는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마음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움켜쥐고 있었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주렁주렁 매달린 성탄트리 앞에서 저렇게 많으니,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주지 못했다. 낱낱의 모양도 빛깔도 다르고 힘들게 찾고 구했으니, 내가 갖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지 않았던가.

트리 장식을 마쳤다. 토기촛대에 초를 얹는다. 대림절에 쓰이는 보랏빛 초는 구하지 못했지만, 명 권사님이 주신 두 천사처럼 손을 모으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선 권사님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촛불을 켜고 있다.

은옥진 권사 / 서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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