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 성경'과 상표 등록

[ 법창에비친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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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9일(화) 17:34

서헌제 교수
중앙대 대학교회

성경의 이름은 성경책이라는 상품에 붙인 상표이며 상표로 등록된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 과거 어느 출판사에서 '큰글성경'이라는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하였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큰글씨 성경전서'라는 제목의 큰 글씨로 된 성경책을 판매하자 두 출판사간에 상표 침해 여부에 대한 분쟁이 발생했다. 이에 특허청에서는 '큰글성경'이라는 상표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상표등록무효로 결정하였고 이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소송에서는 '큰글성경'이라는 상표가 상표법에서 말하는 '상품의 산지, 품질, 효능 등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된 표장'인 기술적 표장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가령 '좋은 성경'이라는 것은 성경이 좋다는 의미에서 보통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기술적 표장에 해당하는데, 만일 이를 상표로 등록하게 되면 특정인만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려는 취지에서 기술적 표장은 상표로서 등록이 되지 않는다.

원고측의 주장은 말을 글로 적은 '글씨'에 대하여는 크다, 작다라는 수식이 가능하지만, 여러 말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감상, 경험 및 현상을 나타낸 것을 총칭 하는 '글'에 관하여는 크다, 작다 라는 수식을 붙이지 아니하며, 결국 '큰 글'이라는 것은 '위대한 글' 또는 '훌륭한 글'이라는 의미를 암시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조어(造語)에 해당하는 것이지, 커다란 글씨로 이해될 여지는 없고 따라서 이는 기술적 표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특허법원은 '큰글'이라는 표장은 비록 문법적으로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할지라도 직감적으로 '크게 쓰여진 글씨'를 떠오르게 하고, 원고의 주장과 같이 '위대한 글' 또는 '훌륭한 글'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즉시 이해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여 원고측의 주장을 배척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크다'와 '글'이 지닌 관념을 '큰글 성경' 상표의 지정상품들(성경, 성경교재)의 내용 및 거래실정 등과 함께 고려하여 보면,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들은 '큰글'을 '외형적 크기가 큰 글자' 또는 '훌륭한 글'이라는 뜻으로 인식하여 '큰글 성경' 상표의 의미를 '큰 글씨로 쓴 성경' 또는 '훌륭한 글인 성경' 등으로 직감할 것이라고 판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큰글 성경'이 상표법에서 말하는 기술적 표장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큰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상표법이 규정하는 '품질이나 용도 등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구성된 상표'에 해당하여 상표등록이 무효라고 함으로써 결론에 있어서는 특허법원과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원고측은 '큰글 성경' 상표의 등록이 무효가 되자 '아가페 큰글 성경'이라는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하여 등록한 다음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특허법원은 언어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기계적인 해석만 하였으나 대법원은 언어의 형이상학적 의미까지도 포함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하였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언어의 인식에 있어서도 상급법원임을 보여준 하나의 예라 하겠다. 이 판결이 성경은 문자 그대로 '큰글', 즉 '위대한 글'임을 우리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면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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