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자

[ 성서마당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4년 12월 09일(화) 17:19

초청의 귀중함을 아는가?

차정식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예수께서는 먹는 걸 즐기셨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제자들이나 초청해준 사람들과 어울려 그는 종종 식사를 나누시며 그 자리에서 가르치셨다. 이 비유는 '큰 잔치 비유'로 알려져 있는데 마태복음의 평행문에서는 임금이 아들의 혼인을 위해 베푼 잔치로 그 배경이 더 자세히 제시되어 있다. 누가의 이 비유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한 마디 하니까 예수께서 이에 반응하여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이다. 비유 속에서 큰 잔치를 베푸는 주인공은 어떤 익명의 사람이다. 많은 사람을 청했지만 그 모두가 밭과 소를 산 일, 장가든 일 등을 핑계로 그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초청한 집 주인은 진노하고 종들을 시켜 거리와 골목으로 나아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게 했고, 그래도 자리가 남아 있자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 사람을 강권하여 자신의 잔치자리를 채우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비유는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교회 예배당의 빈자리를 채우라는 메시지로 적용되곤 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비유의 메시지를 당대적 배경과 연계시켜 해석한다. 요컨대 이 비유의 이면에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먼저 들은 선민 이스라엘의 교만한 패역과 이로 인해 복음이 부정한 자로 간주된 사회적 변두리 계층의 사람들에게로, 나아가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방인들에게로 확산되어간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 비유에서 특별히 의미심장한 부분으로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함께 떡을 먹는 자리'로 비견됐다는 점과 그것이 특별한 초청의 자리와 연계돼 나타난다는 점이다. 잔치나 축제를 하나님 나라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이해하는 관점은 이제 많이 익숙해져 있다. 아울러 그곳이 신이 나고 흥겨운 즐거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대체로 공유된다. 그런데 그 기본 전제는 초청하는 그 자리에 사람들이 흔쾌히 응낙해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초청자를 존중하는 선택이고 그 잔치의 값어치를 제대로 분별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세상일로 분요한 자는 타인을 향한 배려의 여백이 없다. 하물며 하나님을 모셔 들일 만한 충실한 신앙의 공간이 생길 리 없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관한 한 자기의 삶에 배부르고 자족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가 복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잔칫집 주인의 강권하는 은총의 선물로 오늘도 이 땅에 초청의 형식으로 베풀어지고 있다. 핑계를 앞세우는 일방적 거부는 평생 가장 고귀한 만남의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실수가 될 수 있다. 이전에 청함을 받은 자가 많았지만 그 중에 잔치를 맛본 자가 없었다는 결론을 엄중히 새겨들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초청의 귀중함을 아는 자인가.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