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 곳은 어디인가

[ 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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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9일(화) 17:14

문정은 목사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신앙ㆍ선교ㆍ일치 국장


모세는 덤불과 수풀만 무성한 황량한 황무지 광야 한 가운데,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불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말씀하신다. 불 타는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여 무심코 다가 오려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기' 모세가 서 있는 곳이 하나님의 산, 거룩한 땅임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애굽에서 고통 중에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출3:7)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모세에게 말씀해 주신다.

푸르른 나무 한 그루 없는 불모지 광야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곳은 거룩한 곳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 됐다. 모세의 사역은 그가 서 있는 곳, 그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더욱 낮아지고, 겸손한 자기비움의 모습을 모세에게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권세 있고 힘 있는 애굽의 왕자 모세가 아닌, 광야에서 양 떼를 치는 가난한 목자, 모세에게 찾아와 주셨다. 그리고 더 낮아지고 낮아진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이행해 줄 것을 요구하신다.

신학교에서 성서신학을 배울 때 "성서 해석의 첫 단계는 그 말씀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어딘지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난다. '지금, 여기' 내가 선 곳은 어디인가? '지금, 여기' 우리 교회가 선 곳은 어디인가? 요즘 들어 많은 미래학자와 신학자들이 앞으로 20~30년 후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다. '과연 앞으로 기독교가 존재할까'라는 극단적인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성장의 속도가 둔해지면서, 이젠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교회 성장의 쇠퇴기에 들어선 분명한 현실 앞에서, 한국교회는 '지금, 여기' 우리의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활발한 교회 성장을 이룬 때는 교회가 고난의 자리 한 가운데 있을 때였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70~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 슬픔과 고난의 자리에 교회가 함께 했을 때, 교회가 참 교회다움을 유지할 때, 교회는 성장할 수 있었다. 어느 신학자는 말하길, "기독교는 가난하고 박해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놀랍게 성장한 반면, 부유하고, 안정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쇠퇴한다"고 했다. 이는 세계 기독교 인구의 분포를 보더라도 분명하게 입증된다. 부유한 부자로 인정받는 북반구 국가들에서는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지만, 남반구의 가난한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기독교인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반면 세계 선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지금, 여기' 한국교회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교회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는 부유한 부자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좁은 문보다는 큰 문을, 낮은 자리 보다는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있지는 않은가. 힘 없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보다는 권세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지금, 여기' 광야와 같은 선교의 현장으로 나를, 우리를, 우리 교회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철저한 회개와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환난 가운데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며,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롬12)"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세상과 주님의 복음이 소통하도록 돕는 교회, '지금, 여기'를 사는 모든 이들의 아픔과 고통, 상처를 싸매어 주고,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참된 치유자, 화해자, 생명을 주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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