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번역과 저작인격권 (상)

[ 법창에비친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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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9일(화) 17:06

서헌제 교수
중앙대 대학교회

 
대한성서공회는 개역성경 1952년판과 1961년판 및 1988년판(개역개정) 이외에도 1971년에는 천주교와 공동으로 '공동번역 성서'를 출간했고, 1993년에는 시대 변화에 맞춰 '표준새번역 성경'을 발간한 바 있다. 그런데 1993년경 성서공회의 성경번역과 폐쇄적 운영에 비판적이던 교단들이 모여 한국성경공회(KSHB)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성경간행사업에 착수했다.

성경공회는 당시 이미 저작권이 소멸된 성서공회의 1952년판 개역성경을 밑본으로 하여 그 내용 중에서 신학적으로 문제되는 부분, 어휘의 번역상 문제가 있는 부분, 어려운 한자어 부분, 번역이 미숙한 부분, 현대어법에 어긋나는 부분 등을 수정하여 1997년 6월경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성경'이라는 이름의 성경을 간행했다. 그러자 성서공회는 성경공회의 말씀성경이 성서공회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그 배포를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을 제기했다.

말씀성경은 성서공회의 1961년판 개역성경과는 전체 약 40만 4000단어 중에서 약 1만 6600단어가 상이해 4% 정도의 차이가 있고, 전체 약 3만 1101절 중에서 약 1만 1080절이 상이하여 36%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상이한 절의 경우 한 단어만 바뀐 절은 약 7631절, 두 단어만 바뀐 절은 약 2407절, 세 단어 이상 바뀐 절은 약 1042절 정도이다. 그리고 상이한 단어의 대부분도 어려운 한자어를 고친 것, 고어를 현대어로 고친 것, 또는 문장의 태(態)를 바꾼 것, 토씨를 바꾼 것, 번역을 바꾼 것 등에 불과하다. 구문론적으로도 문장구조가 동일하며, 동일한 절 약 64%는 단어의 구성과 배열순서까지 완전히 동일해 그 실제 내용을 전체적으로 볼 때 일반인으로서는 말씀성경이 1961년판 개역성경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했다.

제1심법원은 "복수의 번역문이 존재하는 경우 그 번역의 기초로 된 원문이 동일한 것인 한 그 내용이나 용어 자체가 부분적으로 동일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말씀성경은 1952년판 및 1961년판 성경에 상당 부분을 의거한 것이기는 하나, 성경공회의 정신적 노작의 소산인 사상이나 생각의 독창성이 나름대로 표현되어 있다고 보기에 족하므로, 결국 말씀성경은 1952년판 및 1961년판 성경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성경공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성서공회의 1952년판 성경에 관한 저작재산권은 소멸하였지만 저작인격권으로서 그 내용형식과 제호를 변경할 수 있는 영구존속의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성서공회 이외에는 1952년판 성경의 내용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또한 성서공회는 1961년판 성경에 관하여 저작재산권으로서 복제권과 배포권을 가진다. 말씀성경은 1961년판 개역성경과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성경공회가 성서공회의 동의나 승락을 받지 아니하고 무단히 1952년판 성경을 수정하여 말씀성경의 번역작업과 간행준비를 마친 행위는 성서공회의 1952년판 성경에 관한 변경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동시에 1961년판 성경의 복제권을 침해한 행위이다"라고 판시하여 이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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