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가문처럼

[ 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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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9일(화) 16:42

서진한 목사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사람을 대할 때 좋은 가문이냐 아니냐를 살피고, 가풍(家風)과 족보를 논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젊은이들이야 별 의미를 두지 않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그런 것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집안의 내력이 어떠한지, 누구의 자손인지, 뿌리와 전통이 있는 집안인지 아닌지가 사람 평가의 중요한 요인이 되곤 한다.

한때 강북 부자들이 강남의 신흥 부자들을 폄하해서, '졸부'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졸지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니, 집안도 별 볼일 없고, 가풍이나 전통도 없는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상류층의 품격을 떨어트린다고 본 것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가문이나 전통으로 판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가문과 전통을 중시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점도 있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가문의 명예와 자신의 품격을 지키도록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다른 가치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오늘날의 세태를 생각하면 꽤나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독교 신앙에도 품격이 있고, 전통과 뿌리가 있다. 우리 사회에 난립한 수백 개의 개신교 교단 중에서 그래도 몇몇 교단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른바 뼈대 있고 전통 있는 교단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교파의 전통도 있다. 장로교의 전통이 있고, 감리교나 다른 교파의 전통이 있다. 각 교파에서 중시하는 것들이 있고, 가문마다 가풍이 있듯이 교파마다 교풍(敎風)이 있다. 교파가 생겨난 데에는 역사적 연원과 신학적 이유가 있고, 그것은 그대로 전통이 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뿌리 없고 전통 없는 가문 같다. 우선 사회적으로 품격 있는 종교로 인정받지 못한다. '개독교'라고 하는 불미스러운 호칭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뿌리와 전통이 없다 싶은 것은 교회 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다운 점도 찾기 어렵고, 교파들 사이의 차이점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 기독교 초기부터 정착된 '예배당'이라는 단어는 근래에 듣기 어려워졌다. 다들 '성전'이라고 한다. 성전 건축, 제2성전 등이 그렇다. 성전은 유대교의 전통이다. 그뿐만 아니다. 예배당 안을 보면 다들 비슷하다. 앞쪽 한가운데에는 크리스탈로 만든 크고 화려한 설교대가 버티고 있다. 설교대 좌측이나 우측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심지어는 그 스크린이 한가운데 설치된 데도 있다. 그것도 장로교회에서 말이다.

전통적으로 장로교회는 강단을 검소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장로교회를 출석한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예배당의 검고 작은 설교대를! 그 설교대는 언제나 강단 한쪽 옆에 놓여 있고, 강단 한가운데에는 십자가와 성경만이 놓여 있던 것을!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개신교는 천주교의 성상들과 화려한 장식과 벽화들을 배격하였다. 개신교는 모든 형상들을 쓸어낸 그 자리에 성경을 놓고 십자가를 세웠다. 형상을 배격하고 인간적인 것을 배제하려 했다. 신의 은총과 말씀만을 내세운 것이다. 장로교는 이 전통을 가장 엄격하게 실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로교는 열광적인 태도를 삼갔고, 심지어는 교인들의 복장에도 화려한 색깔과 노출을 삼가게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장로교회 예배당에서 목사가 강단 한가운데 놓인 크리스탈 설교대에서 상아색깔 양복을 입고, 강단 벽 중앙에 달린 대형 스크린에 자신의 얼굴을 크게 띄우고 열변을 토한다. 교인들도 열광한다. 장로교 전통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그야말로 뿌리 없는 모습이다. 예배의 전통도 흔들린 지 오래다. 교파마다 있던 특색을 찾기가 어렵다.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도입하게 된 것이 오늘날의 세태인가 싶다.

물론 전통은 재해석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통은 함부로 취급하여 폐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과 뿌리가 없다면, 교파나 교단은 단지 분열된 하나의 종교 세력일 뿐이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도 전통과 뿌리를 확인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알아야 일치를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모르면서 어떻게 남과의 일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장로교 100회 총회, 그 다음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이에 대한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우리의 뿌리와 전통을 망각한다면, 아무리 종교개혁을 말하고, 장로교 100회 총회를 자랑한들, 그 무슨 소용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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