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1~6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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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7일(목) 13:08

월-선(線)을 넘는 사람들
본문 : 행 10:9~16
찬송 : 304장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절대로 넘어서는 안되는 선, 혹은 넘으려해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선은 양면적이다. 안전과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동시에 사람을 가두거나 갈라놓는다. 역사는 일면 선을 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고 새로워진다. 
 
오늘의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으로,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와 정통 유대인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사도인 베드로의 만남과 그들의 선을 넘는 용기있는 믿음의 행동을 전해준다.
 
고넬료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으로 로마인이었다. 로마인들은 비 로마인들을 멸시했고, 자신들의 지배와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고넬료는 순종하여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낸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릇된 선민사상으로 종교적인 우월감과 교만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사랑하신다거나 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아직은 일반 유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대세계에서 시작된 복음의 역사가 선을 넘어 이방세계로 간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선을 넘는 결단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기도하던 베드로가 큰 보자기에 있는 유대인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본다. 환상 속의 음성은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하신다.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거절하지만, 이어지는 음성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로 작정하고 천국의 보자기에 담아 주신 이방인을 누가 함부로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선을 넘으라'는 메시지였다.
 
그날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결국은 유대인의 선을 넘어 이방인 고넬료가정을 방문한다. 훗날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예루살렘교회에 보고했다. 이것이야말로 초대교회가 발견한 가장 중대한 발견이었다.
 
예수께서 선을 넘으셨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해가 아니라 온 세상 만민을 위해 돌아가셨다. 그분은 하늘의 경계선을 넘으셨고, 예루살렘이라는 안전의 선을 넘어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친히 나무에 달리셨다.
 
그 주님께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은 곧 선을 넘어서라는 말씀이다.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여기를 지나 저기에도, 우리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복음과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자.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나와 우리를 넘어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혁성 목사
송정교회


화-가을 같이 사는 인생
본문 : 대상 29:13~14
찬송 : 421장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사람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어찌 생각해보면 서운해 할 만도 한데 다윗은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온 백성들과 함께 이를 준비한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그의 기도 속에서 이 가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감사의 제목이 있다.
 
첫째,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라는 고백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 내밀어주신 결과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의지로 자기를 택하여 세워주신 은혜임을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고통스러운 삶, 가진 질병, 경제적 어려움, 막연한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허락하신 '절대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둘째,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라는 고백으로 다윗은 믿음 주심에 감사하고 있다. 아무나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다윗이 말한 '이처럼 드릴 수 있는 힘'이란 다윗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믿음을 주심에 대한 감사이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복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가장 큰 축복이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감사하고 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내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주인인 줄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벌었으니 내 돈이고, 내가 낳았으니 내 새끼고, 내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내 땅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멋대로 사는 것이다. 요즘은 물질이 풍족해도 여유가 없다. 베풀고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청지기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욕심내며 살지 않고 나누며 살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선한 사명을 맡기시고 청지기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광식 목사
홍광교회


수-히스기야 왕의 신앙
본문 : 왕하 18:1~8
찬송 : 384장

오늘 말씀은 남유다 13대 왕으로 통치한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었다. 통치하는 동안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남유다를 약 23년간 통치한 휼륭한 왕이었다. 오늘 이시대 히스기야왕의 신앙을 본 받기를 원한다. 그가 받은 축복도 우리 모두 받기를 바란다.
 
첫째, 신당을 제거했다. "그가 여러 신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히스기야는 나라를 더럽히고 선민의 거룩성을 파괴하는 우상을 철저히 제거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온갖 거짓 종교, 거짓 신들의 미혹을 받아 타락하므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다. 그래서 히스기야왕은 악의 뿌리, 불경건, 죄악, 우상숭배의 뿌리가 되는 신당을 철저히 제거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사도바울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땅에 있는 지체는 쉽게 미혹받는다. 탐심을 버려야 한다. 탐심을 근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상숭배에서 자유하지 못하다. 탐심을 이겨내고, 투철한 신앙으로, 히스기야처럼 축복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 여호와를 의지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이 말씀은 오늘 우리도 예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히스기야왕 일생 중에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가 질병의 위기였다. 하나님은 "다 정리하라. 죽음을 준비하라"고 명하신다. 히스기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에게 병 나을 것을 선포한다. 히스기야는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다. 하나님만 굳게 붙잡으시기 바란다.
 
셋째,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이 말씀은 형통함의 축복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어 보면 8절 히스기야가 블레셋을 쳤고 가사를 정복했다고 기록한다. '가사'는 지금의 '가자 지구'이다. 이는 본래 이스라엘 땅인데 블레셋에게 빼앗긴 땅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형통케하게 하셨고, 그 땅을 회복시켜주셨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최강국 앗수르가 침공해 왔을 때도 형통케 하셨다.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예수님만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심을 누리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상을 제거하여 주시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형통의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영식 목사
황성제일교회


목-섬김의 모델이 되어라
본문 : 행 11:24~26
찬송 : 212장

성경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있다. 이 중에는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없이 등장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등장인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다양성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바나바는 '서번트 리더십'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본인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적임자를 알아보고, 그를 지원해 주며, 섬기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도 막상 살아가는 방식으로 구분해 보자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채권자형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둘째는 채무자형이다. 그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부모 형제나 스승은 물론, 하나님께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기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 남한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 중 누가 더 존경받고 행복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채무자형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대가 남을 위하여 착한 일을 할 때에는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은 '바나바'라는 섬김의 사람이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권위자,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 격려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바나바는 그의 이름처럼, 친절하고 온화하고, 인정도 많고, 항상 이웃을 돕고, 남을 격려하는 너그러운 인격자였고 평화의 중재자였다. 그는 바울을 도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였고, 함께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 여행을 하였다. 동시에 이방인 지역의 성도를 위로하고, 권고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를 감당한 큰 일꾼이었다. 그래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요, 사도'라고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바나바가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헌신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바나바는 당시 소문난 재벌가였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자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울이 변화된 것과 개종된 후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믿지 않고 두려워했다. 이때 바나바가 나서서 설득해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하도록 도와주었다. 이처럼 오늘날도 교회에서 바나바 같은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한다. 오해를 풀어 주고 일하게 만들어 주며 믿음의 공동체를 섬기는 바나바 같은 사람이 되자.
 
오늘의 기도
 
섬기는 삶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지난날 헌신하지 못하고 남을 돕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섬기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승원 목사
푸른숲교회


금-광야의 영성이 있는 삶
본문 : 출 13:18~22
찬송 : 411장

출애굽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형통한 땅으로, 평안한 땅으로, 좋은 땅으로 데려가지 않고 광야로 인도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시고 모든 것을 다 갖고 계시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사랑하는 민족을 제일 어려운 땅으로 인도했다. 광야로 인도하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행로를 따라서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내려서 걸어보면 가도 가도 끝이없어 보이는 사막으로 난 먼 길을 만나게 된다. 광야는 정말 무서운 땅이다. 숨막히는 더위와 뱀, 전갈, 독사, 맹수의 위험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땅. 나무와 가시가 있지만 물이나 양식은 없는 곳이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얼마나 놀라운 경험을 했는가? 하나님이 반석에서 생수를 열어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은혜의 시기는 출애굽과 광야생활이다. 이 기간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기간이었고, 은혜에 잠겨 산 시대였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있고, 소리가 있다. 광야는 태초의 말씀이 흐르고 들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크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캘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무한 그 자체다. 볼 수 없는 자신의 세계가 광야에는 있다. 볼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이 광야에서는 보인다. 느낄 수 없는 세계가 광야에서는 느껴진다. 광야는 죽은 땅이 아니다. 무한을 품고 있는 살아 있는 땅이다.
 
광야의 수도사 카를로 카레토는 그의 책 '사막에서의 편지'에서 "그대가 만일 사막에 갈 수 없다면 그대의 생활 가운데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한다. 도시의 쉴새없는 소음과 귀청을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해방되는 사막이 우리의 삶에 있어야 한다.
 
지금이 그렇다. 때로는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광야길을 만들어야 한다. 광야의 생활은 은혜의 생활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연속이다. 세상이 너무 풍성하기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던 것들이 사막이 있는 광야에서는 무한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인생의 광야길을 만들어 나가며 영성을 쌓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또 다른 하나님의 무한하고도 풍성한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로 인도하셔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듯이 인생의 광야길을 만들어 나가며 영성을 쌓아가는 백성들에게 늘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기 목사
정자교회


토-어둠의 매력
본문 : 요 9:1~12
찬송 : 288장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이것은 만물과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시는 나눔이셨다. 하나님은 그 나누시는 창조사역을 오늘도 개인의 삶 속에서 계속 하고 계신다. 그 예가 본문의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으므로 한 번도 빛을 본적이 없다. 단지 청각과 손끝에 전해오는 촉감으로 사물을 익혀갔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끌어주면 이끌려가서 사람들이 던져 주는 것으로 끼니를 연명해갔다. 그 부모 역시 좋은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부모 역시 죄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고 있었다.
 
그 맹인과 부모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으면 사람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겠는가. 그는 단 한 번도 무엇을 본적이 없다. 그 완전한 어둠에 드디어 빛이 찾아왔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그를 본 것이다. 그가 어둠이었기에 빛의 은총을 입은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가까이 오게 하시고 자신의 침을 섞은 진흙을 눈에 발라주시며 씻게 하고 그 눈을 뜨게 하셨다. 이는 마치 아담을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을 연상시킨다. 바로 하나님의 하실 일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입김을 나눠주신 것처럼 예수님도 입의 침을 나눠주어 그가 빛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
 
오늘 본문의 뒷부분을 더 읽어보면 그는 눈을 뜨고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눈을 뜨자 마자 회당에서 출교를 당해 그 부모조차 아들을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눈을 뜨긴 했으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손끝으로 익힌 세상보다 눈 뜨고 본 세상은 더 참혹했다. 그는 여전히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안식일에 눈 뜬 일로 인해 심문을 당해야 했다. 그는 또 다른 어둠에 직면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어둠 속으로 예수님이 다시 한번 찾아오셨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다"하신 말씀을 몸으로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하실 일이다. 그는 비로소 영의 눈을 떠서 참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어둠이 아니었으면 어찌 이런 은총을 누리겠는가. 지금 누군가 어둠 가운데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하실 일을 품고 있는 것이다. 힘들고 아프지만 어둠의 매력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둠에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빛으로 초대하시는 부르심에 응답하게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여임 목사
아가페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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