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되길 잘 했지요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곽충환 목사
2014년 11월 18일(화) 14:28

잘 아는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하객으로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예식은 교회에서 치러졌다. 주례는 신랑을 아끼는 그 교회 원로 목사님이 맡았다. 시작 무렵, 집례하실 주례자 옆에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누구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궁금했다.

신랑 신부가 입장했다. 그리고는 찬송과 기도, 성경 봉독이 이루어질 쯤, 하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례 목사님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횡설수설하신다. 치매 끼가 발동한 것이다.

기도할 때 찬송 부르자 하고 성경 봉독 때 기도하자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신랑을 사랑하셨던 원로 목사님께 축복을 받고 싶어 주례자로 모셨던 것이다.

주례자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아드님이었다. 주례하시는 아버님께 순서를 알려주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도우려고 함께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예식 시작인데 낭패인 것이다. "이게 뭐야! 결혼이 장난이야?" 하객들이 일어나 나가려고 한다. 마무리 방법이 없다. 이를 어쩌나?

벌떡 일어나 주례단 앞으로 갔다. 내가 목사임을 밝혔다. 신랑과의 관계도 말했다. 나이 드신 목사님의 입장도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제가 주례를 하겠다"고 했다. 주례사와 서약까지 모두 잘 마쳤다. 혼주의 가족과 하객 모두 안도했다. 때마침 입고 온 양복도, 그동안 해왔던 여러 차례의 주례 경험도 바로 에스더의 '이때를 위함이 아니었는지'요.

때로는 '목사 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위와 같은 날이다. 오직 목사만이 할 수 있는 자리였으므로.

어느 날은 목사이기에 교통순경도 봐주고(?), 치과에서는 할인도 해주고, 식당에서는 대신 밥값도 내주고, 친척 대소사에 참석 못해도 목사라서 면죄부를 받는다. 특별히 설교가 좋을 때면 은혜 받는 성도들의 모습에 얼마나 귀한 자리인가를 또 생각해 본다. 우후, 영혼을 살리는 자리!

또 하나 더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 안 나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이 있다. 서운한 일이 있었을 것이고, 미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땐 목사님께 시험 받기도 했겠지 싶다. 그래도 걸어 잠근 문 너머로 목사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굳게 닫힌 마음도 열어 재끼는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본다. 심방으로 찾아가서 살포시 손잡아 주면 마음을 돌이킨다. "미안해요, 목사가 좀 모자라서 그려."

이제는 그 마저도 점점 약발이 약해져 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목사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곽충환 목사 / 나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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