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설리번과 김선태 목사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4년 11월 18일(화) 11:26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미셸. 그녀는 보고, 듣고, 말하기가 불가능한 중복 장애인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숨만 쉬고 있던 미셸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2005년 인도에서 제작된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블랙(Black)'이란 영화입니다.

허리에 방울을 차고 다니면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야만 했던 이 소녀는 사하이 선생을 만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영화에선 사하이 선생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력이 그려집니다. 선생은 소녀를 분수대로 데리고 가서 '물'이라는 단어를 손에다 그리면서 알려주고 "남들은 모두 A.B.C.D.E~ 로 알파벳을 시작하지만 너는 B.L.A.C.K~ 로 너의 알파벳을 시작한다"고 가르칩니다.

새도 만져 보고 공놀이도 하면서 손 등에 글씨를 써 가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칩니다. 마침내 대학에 입학하여 사하이 선생과 함께 수업에 참석하여 공부를 합니다. 2학년으로 진급하는 데 4년이나 걸리지만 어느덧 점자 타자기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하이 선생은 미셸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졸업식 전에 사하이의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12년 만의 재회. 그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제자에게 눈이 되어주었던 스승, 그러나 이젠 알츠하이머에 걸린 스승에게 스스로 세상을 살 수 있게된 제자는 도리어 스승을 보살피게 됩니다.  .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갑자기 정전이 됐는데, 미셸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항상 다니는 길이라 잘 걸어가고 오히려 선생은 앞이 캄캄해서 넘어집니다. 상황이 바뀐 것이죠. 영화 '블랙'은 단순히 보이지 않아 캄캄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들의 편견이 장애인을 더욱 더 어둠 속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인도 판 헬렌 켈러와 설리번의 이야기입니다. .

헬렌 켈러는 '삼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란 자신의 수필에서 첫날은 '스승 설리번과 친구들과 저녁 노을'을, 둘째 날에는 '장엄한 일출과 아침 이슬, 박물관과 미술관과 책'을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셋째 날에는 '일상에 바쁜 사람들의 얼굴과 여성들의 옷 색깔, 영화관'을 보고싶다며 "내일이면 다시는 보지 못하고, 다시는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감각들을 활용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감사는 설리번 선생이 그녀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녀의 감각들을 일깨워 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녀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과 그녀의 존재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만나게 한 것이죠. 그것이 설리번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11일. 국내 최초로 시각중복장애인의 교육재활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가 대통령이 집무하시는 청와대 근처 청운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시각장애 외에 발달장애나 지적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장애 등을 수반한 시각중복장애인들을 원만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시키고자 설립한 전문 교육기관입니다. 이곳을 세운 이는 놀랍게도 본인도 앞을 보지 못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 이사장 김선태 목사입니다. 설리번의 정신을 본받아 센터 이름을 지었다고 했는데 설리번도 하지 못한 일을 이뤄낸 김선태 목사. 그야말로 진짜 설리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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