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회자 가정 이야기

[ 기고 ] 독자투고

류원주 목사
2014년 11월 12일(수) 14:20

 
새벽 2시, 예전과 다름없이 일정한 시간에 눈을 떠서 어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노회가 있었는데 총회에서 결의한 세습에 관한 내용에 대한 여부를 묻는 시간에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는데 왜 목회자의 자녀에게는 평등하지 않느냐" "나의 아버지도 목사였는데 나는 아버지의 목회지를 세습받지 못했다. 그런데 왜 목사의 자녀들에게만 이렇게 부당한 법을 적용해야 하나? 왜 목회자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목사라는 것으로 불평등한 법에 희생당해야 하는가?" 필자는 안양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인 동은교회에서 23년째 목회를 하고 있는 류원주 목사이다. 장신 72기 졸업생이며 새문안교회 부목사로 5년 동안 재직하던 중 이곳에 위임목사로 청빙되었다.
 
부친은 17년 선배이시며 본과 55기로 졸업하시고 평생 목회만 하신 은퇴목사이다. 목사 아버지를 두어 어려운 목회자의 생활에 감당이 안 되어 기독교를 죽도록 싫어하는 유교집안에서 조부모, 숙모의 밥을 먹으며 성장했다. 행여나 부모님이 나를 버리진 않을까 하며 부모와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결국 중학 1학년 때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학창시절 중 단 3년만 어머니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성장하며 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공부했고 까다롭고 힘든 목회지에서 은혜로 선택되어 지금까지 많은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동생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바로 아래 아우는 가출하여 보육원, 중식집, 공장을 전전하다 환경미화원으로 정년 은퇴를 앞두고 있다. 셋째 아우는 부모가 목회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랑을 하다가 어느 날 새벽에 그 아가씨와 함께 기차에 치어 이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를 여섯 번이나 전학해야 했던 막내 동생의 직업은 서울지방의 소방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퇴근길에 넘어져 경추를 다쳐 병원에서 2년째 목 위로만 정상인 채로 누워있다. 부모님은 이런 아픔을 안고 80대 노인이 되었다. 부친은 필자를 보면서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목사가 되어 큰 목회를 한다"며자랑스러워 하신다.
 
그런데 필자에게도 자녀들에 대한 아픔이 있다. 딸 아이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아들은 연대 신학과를 수료했으며 오랜 방황 끝에 음악 신학대학원 출신으로 함께 교회에서 음악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필자가 아들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자식에게 세습 준비하느냐고 농담처럼 말한다. 세습이라는 세속적인 판단으로 목회자의 자녀로 성장한 것이 죄인처럼 폄하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필자가 목사의 아들이어서 고생하면서 살았던 과거와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목사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아픔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습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목사의 자녀이어서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현실은 어떤가? 성직의 거룩함은 변질되고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의 횡포에 가려진 것 같다. 아무에게나 무조건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없는 것처럼 목회자 자녀에게만은 안 된다는 것은 법 앞에 평등이라는 법 정신에 어긋난다. 목사의 자녀여서 더욱 외롭고 고통스럽고 아프게 살아야 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목사의 자녀이어서 평등을 경험해서는 안 된다는 이 잣대는 마치 다수의 횡포, 군중들의 외침과 세속적인 가치관에 광분한 유대인들과 같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치는 무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필자는 아버지가 목사여서 자랑스럽다. 그리고 자녀들이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줘서 감사하다. 이 감사를 우리 자녀들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 후손들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류원주 목사/동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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