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10~1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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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6일(목) 13:42

월-거절할 줄 아는 사람들
본문 : 렘 35:1~11
찬송 : 354장

사람들은 거절당하는 아픔으로 힘들어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절하지 못한 그 무엇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고통 중에 살기도 한다. 남왕국 유다의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어느 날(BC 588년경)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셔서 "너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는 이상한 말씀을 주셨다.
 
레갑사람들은 요청에 따라 성전의 부속실인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레갑의 후손들에게 포도주가 가득한 종지와 술잔을 놓고 마실 것을 권한다. 그러나 레갑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선조 요나답의 유훈을 이유로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고 추호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선지자의 술대접을 거절한다. 온 백성의 존경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의 권유 앞에서도 그들 중 한 사람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성경에는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여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뱀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한 아담과 하와, 물질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모압왕의 청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여 어그러진 길로 간 사람,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는 치욕적인 이름을 남긴 발람선지자가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거절하실 것을 거절하신 본보기를 남겨 주셨다. 40일을 금식하신 후 시작된 사탄의 유혹을 예수님은 단호하게 모두 거절하셨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불의하고 부정한 재물, 잦은 술자리 권유, 그럴듯한 이유로 끊임없이 다가오는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자. 돈만 모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거절하고 버리자.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하시는 삶을 살아가자.
 
철저한 순종의 사람이 되자. 레갑의 후예들은 예레미야가 권하는 포도주를 거절하면서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들의 조상이 지시한 말을 회고하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포도주를 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뿐만 아니라 아내도 자식도 평생토록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레갑은 죽었어도 레갑과 요나답이 남긴 교훈을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철저히 지켰던 것이다. 교회를 개혁하고 바른 믿음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는 그것이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진미와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했던 다니엘과 세 소년처럼, 불의한 재물, 음란한 문화, 우상숭배와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대의 풍조를 거절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회복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레갑의 후손들처럼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주께서 하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혁성 목사
송정교회


화-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성도
본문 : 골 3:1~4
찬송 : 412장

사람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참 중요하다. 오늘 하루 무엇에 몰두하고 있느냐, 그것이 우리의 존재가 되고 삶의 의미가 되고 운명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본문 2절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기독교는 위의 종교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에서 주시는 평안과 위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래의 기쁨으로 산다. 술 취하고, 음란하고, 방탕한 데서 기쁨을 찾는다. 왜 땅이 아닌 위의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본문 3절 첫 부분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5장에 우리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한다. 정과 육체의 욕심으로 살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근심, 걱정, 욕심, 시기, 질투 이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살라는 것이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주님이 부활하실 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던 나 자신이 새 생명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 생명을 소유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때문에 삶의 의미, 목적, 가치관, 행복도 바뀌게 된 존재라는 것이다.
 
셋째,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땅에 살지만 내 생명은 위에 벌써 감추어져 있다. 우리의 이름이 예수님의 신부로 천국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 안에 내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에 위를 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것에 속지 말자.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기업이 아들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 땅의 것을 사랑하면 땅에 있는 것도 잃고 하늘에 있는 것도 잃는다. 위의 것을 찾으라.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땅이 아닌 위를 보고 사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광식 목사
홍광교회


수-홍해 앞에서
본문 : 출 14:10~16
찬송 : 358장

사회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정의하기를 호모 에스페란스라고 하였다. 인간은 꿈과 희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항아리 속에 쥐를 넣고 빛을 완전히 차단하면 쥐는 3분밖에 생존하지 못했다. 이유는 희망을 버리고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항아리 속의 쥐에게는 빛을 계속 비추어주었더니 36시간이나 생존하였다고 한다. 빛을 통해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홍해와 같은 바다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모세가 애굽을 떠나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문제가 생겼는데,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의 벽에 부딪혀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모세를 원망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 두려워 마십시오. 가만히 계시면서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구원의 손길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리니 오늘 여러분들이 보는 애굽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잠잠히 계시기만 하면 여호와가 싸우실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모세는 이런 용기 있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정 중 예기치 않던 위기가 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위기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시행했다. 기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다. 모세가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했기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동해야 한다. 인생의 홍해 앞에서도 원망하지 말고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인생의 홍해 앞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승원 목사
푸른숲교회


목-바울의 감사
본문 : 골 3:15~17
찬송 : 438장

현대인들이 잊어버린 단어가 바로 '감사'이다. 감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감사 신앙이 회복되시기를 바란다.
 
첫째,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하셨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은 기도를 하되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기도를 많이 강조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기뻐하는 것, 기도하는 것,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라고 강조한다. 괴로운 일을 당해도 기도하되 감사하며 기도하라. 고난을 당하여도 기도하되 감사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요즈음 기도 생활 가운데 감사가 빠졌다면 회개하고 감사해야 한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6:6)."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감사하며 기도를 드려야 한다.
 
둘째,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라는 것은 구약 시편과 관련이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구약 시편과 관련하여 찬양을 지어 부른 것이 시이다. '찬미'라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늘날의 복음송처럼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고 그 기쁨을 나눴던 노래이다.
 
'신령한 노래'라는 것은 시와 찬미처럼 신령하게 성령의 영감을 받아 지은 찬송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찬송은 성도의 특권이다. 성도가 드리는 찬양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시간, 상황,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찬송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일생 찬양하며 사시기를 바란다.
 
셋째,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셨다.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범사에 감사를 드리는 존재이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이 세상 염려, 걱정, 근심, 불안, 우울증, 두려움, 불만, 악한 생각까지 다 이길 수 있다.
 
오히려 감사하므로 평안, 기쁨, 행복, 소망, 용기, 지혜, 믿음, 성령충만한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감사가 넘치도록 해준다.
 
감사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하옵소서.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영식 목사
황성제일교회


금-감사하는 삶
본문 : 눅 17:11~19
찬송 : 411장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도중 한 마을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만나 고쳐 주신 사건이다.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열 명 모두 깨끗함을 받았지만 그 중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던 것이다. 본문을 통해 진정한 감사를 배워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병환자들은 기본적인 생활권을 박탈당한 채 가족과 사회 공동체에서 추방되고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장례도 따로 치러야 했고, 제사장이 될 수도 없고, 심지어 예배도 드릴 수 없었다. 깨끗해지면 예물을 제사장에게 드려 확인을 받아야 했다. 이렇듯 힘들게 살아가는 나병환자들이었지만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다같이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같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며, 멀리 서서 다함께 주님께 외쳤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모두 나았다.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는 성도에게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공평하다. 하지만 그 열 명 중 오직 한 사람만 주님께 나아와 감사하였다. 그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이었고, 영혼의 구원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유대인들이 경멸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더 큰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감사하는 사람들은 더 큰 은혜를 경험하고 크게 쓰임 받게 된다. 우리 모두 열 명의 나병 환자 중 한 명의 나병환자와 같은 신앙인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나병환자에게서 감사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첫째,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소리 높여 간증하고 전도하고 예배함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 예수님께 나와야 한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다. 구원 받고, 영생 얻고 죄 사함 받은 우리도 주께 나와 감사해야 한다.
 
셋째, 혼자라도 감사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 혼자라도 감사의 길을 가야 한다. 언제나 최고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 늘 풍성한 감사가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큰 소리로 감사하며, 예수님께 나아와 최고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기 목사
정자교회


토-침묵의 매력
본문 : 요 8:1~11
찬송 : 442장

큰 소리는 고막에 전달되고 작은 소리는 마음에 전달된다. 우리 사회는 어디를 가나 큰 소리가 들려와서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특히 큰 소리 후에는 꼭 다툼이 있고 관계가 깨어진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 살기등등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목소리와 땅바닥에 손 글씨를 쓰시는 예수님의 조용한 목소리다.
 
유대지도자들은 죄인인 여자를 끌고 와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성전 뜰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의 판결을 보고자 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자를 법대로 처리하라면 늘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할 것이고 죽이지 말라 하면 예수님 스스로 범법자로 인정하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가엾고 힘없는 한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그들의 속셈 앞에 예수님은 오래 침묵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침묵에 떠들던 소리를 멈추었다. 주님의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침묵하셨다. 예수님의 침묵은 엄청난 울림이 되었다. '타인을 향해 돌을 든 너는 누구냐? 네가 심판자냐? 네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네 손에 든 돌을 어찌하려느냐?'
 
예수님의 말씀과 침묵은 그들에게 남들이 던지면 던질 수 있는데 자신들은 절대로 먼저 돌을 던지지는 못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날 그들은 우리보다 낫다. 그들은 예수님의 침묵의 소리 앞에 돌을 내려놓고 현장을 떠나갔다. 우리들의 손에는 아직도 돌이 들려 있지 않은가. 유대지도자들의 목소리와 마음에는 돌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소리와 마음에는 돌이 없었다. 사람들이 여자의 죄를 볼 때 예수님은 여자의 절망을 보셨다. 사람들이 타인에게만 율법을 적용시키고 있을 때 예수님은 자기에게 먼저 율법을 적용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은 그 현장의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다치거나 상처를 받지 않게 하셨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낮은 음성으로, 침묵으로 하셨다.
 
우리가 죄인을 보고 돌을 들어 던지기 전에 자기 자신을 볼 수만 있다면 손에 든 돌이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몸을 굽혀 땅에 쓰신 글씨가 무엇이었을까? 성경이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이 말씀을 보는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게 한 것은 아닐까?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말에 돌이 섞이지 않도록, 침묵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여임 목사
아가페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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