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참는 것이 선교

[ 선교 ] 땅끝에서온편지/네팔선교사 김정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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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4일(화) 15:54
   
▲ 카투만두 시내.

선교사는 오래 잘 참는 일부터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교육 받아왔다. 우리 한국사람들의 성질은 '빨리'하다 못해 "빨빨리"를 외치며 서둘러 일을 완성해야 속 시원하고 후련하다고 느낀다. 현대 사회에서 속도가 빠르면 칭찬을 듣게 마련이다.
 
그런데 속도가 빠르면 속은 시원하고 좋은데 그것도 자꾸하다 보면 별 좋은 걸 못 느끼게 마련이다. 우리의 입맛이나 느낌, 감정들은 계속 사용하면 무디어져 가기 마련이고, 또 더 자극적이고 좋은 것을 바라는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디고 느리더라도 맛을 천천히 조금씩 느껴가는 것도 오래오래 즐기는 방법이 될 법하다.
 
나는 천성이 느려서 그런지 속도감에서 느끼는 쾌감을 남들만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소띠이기 때문인지 걸음도 소 같이 느리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은근 끈기와 뚝심을 가지고 결국엔 해내고야 만다고 나의 이런 면에 감탄까지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말띠인 5살 연하의 아내와 함께 길을 걸을라 치면 보조를 맞춰주지 않고 어느새 말 같이 한참이나 앞서가 있다. 왜 좀더 참으며 함께 보조를 맞춰주지 않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선교지에서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아내의 열성에 감탄하곤 한다.
 
그런데 네팔에 살면서 느릿느릿한 내 성질도 답답함에 화가 나는 경우를 경험한다. 상습 교통체증지인 카투만두 시내에서 포카라(네팔명승지)와 남부지방, 그리고 2차선 도로로 인도와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껄렁끼 지역(그야말로 이름부터가 껄렁하다)'은 유명하기로 이름 나 있다.
 
한번 막히면 20~30분이 보통이고, 정말 막히고 차량 통행이 어려워지면 5~6시간쯤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태연스럽게 기다리는 것은 네팔사람들이요, 참는 훈련을 숱하게 해왔다고 자부하는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조급증 환자다. 한국 사회에서 생성된 나의 상식과 한국에서 익숙해진 생활습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내가 답답해서 차 밖으로 나가 무슨 일인지 확인이라도 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식으로 오히려 나를 쳐다본다. 그 태연한 모습에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한국에서 하루 걸릴 일이면 보통 5주 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의 시간 관념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태고적으로 돌아간 것 같다. 시간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문화, 소위 액친문화(불교에서 말하는 '찰나')로 불리는 이 문화로 인해 사람들의 시간 관념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다. 이들에게 '찰나'는 때로는 하루가 되고 일년이 되기 때문이다('액친'은 순간, 아주 짧은 시간을 표현함). 카투만두에는 차들이 노후된 것이 많아서 매연으로 인한 공기오염이 심하다. 더운날 도로 한 가운데 있으면 숨이 탁탁 막힌다. 시내를 거쳐 집에 돌아오면 바로 쓰러지다시피 할 정도로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그런데 최근에도 이러한 일을 겪었다. 차량행렬이 이어지더니 금새 정체되어 온종일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다. 덕분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오지여행을 즐기듯 30분 길을 3시간 반에 걸쳐 오게 되었다.
 
그날 들은 소식인데 그 교통체증의 원인은 한 건물의 2층에 사는 네팔인이 1층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 인도인 의사에게 실수로 물을 한 바가지 버린데서 시작됐다. 이 사건으로 인도인 약국 주인의 머리와 옷이 젖었고, 황급히 사과를 하는 네팔인에게 욕을 하고 하다 못해 인신공격을 하다가 큰 싸움이 됐다. 싸움의 과정에서 인도인의 욕설은 주변 네팔인들의 감정을 건드려 이들이 1천만원 상당의 약국 물건들을 내던지고 불태워 버렸단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 중요한 도로가 사람으로 가득 차 하루 종일 차가 발이 묶이고 온 도시가 마비가 된 것이다.
 
한 사람의 감정과 말버릇, 민족감정이 온 도시를 멍들게 하는 최대의 교통체증을 가져 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습적으로 막히던 명물도로도 중국의 도움으로 8차선으로 넓혀 가고 있다. 우리 선교센터로 가는 길목인 이곳이 하루 속히 원활히 소통되도록 기도해 왔는데 하나님은 사회주의 국가를 통해서도 선교의 편리를 도와 주신 것이다. 이제까지 주를 위해 참은 보람이 있다고 혼자 웃기도 했다. 어쨋든 인내를 훈련시키시고, 선교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심에 감격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네팔선교사 김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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