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 성서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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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4일(화) 13:32

최인기 교수
서울장신대학교ㆍ구약학


욥은 세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적어도 세 번은 하나님께 불평했다. 그러므로 '욥이 고난을 끝까지 인내하고 통과했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다'고 하는 욥기에 대한 교회의 관례적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욥기를 욥의 위대성에 초점을 맞춰 해석하려 하면, 욥기 42장 5~6절에서 욥이 회개하는 대목에 가서 우리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40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불의하다 하겠느냐"고 욥을 책망하시는 장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욥은 왜 그렇게 모순에 빠졌을까? 그것은 그의 신앙이 자신과 자기 가정에 복 주시기 위해 자기에게 와 계신 하나님에 관한 내재적 신앙고백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자신의 의로 자신의 신앙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편벽된 신앙은 초월적 신앙고백으로 새로워지고 성숙되지 않으면 안 됐다. 초월적 하나님께서 욥기 38장에 욥에게 나타나셨다. "태초에 이 땅을 창조하고 땅의 만물들을 창조할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질문하실 때, 그의 삶에 빛이 비쳐왔다. 실로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창조하셨던 태초의 그때에 그는 거기에 없었다. 친구들과의 논쟁에서는 잘 대답하던 그가 하나님의 그와 같은 모든 질문들 앞에서는 '입을 가리고' 대답할 수 없게 됐다. 그가 높으신 하나님의 지혜에 접촉되어 초월적 하나님의 위대성을 '눈으로' 뵙듯이 절감하게 됐을 때, 그의 신앙과 인생이 치유되고 새롭게 변화됐다.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도록 인간에게 진실로 개방된 단 하나의 길은 초월해 계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키워나가는 것이다. 때때로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아 혼란과 의혹에 떨어져야만 할 때에라도, 초월적 신앙에 근거한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높이 계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이 세계를 의탁하는 장엄한 신앙에 이르게 한다.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신지식은 우주적 하나님의 교회와 세계를 통치하시는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나아가서 초월적 하나님께 대한 예전은 우리의 예배까지도 엄숙한 장엄함으로 완성시켜준다. 마침내 초월적 신앙고백은 우리 삶을 초월케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교의 도구로 하나님의 장엄하심 앞에 우리를 기쁘게 바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친 백성으로 우리를 마땅히 성별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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