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교회가 무엇이기에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곽충환 목사
2014년 11월 03일(월) 19:31

교회를 개척하고 5년 지난 2월이었다. 새벽 기도 마치고 내려오는데, 교회 계단 장의자에 한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덮여 있던 잠바엔 치약 칫솔과 돈 3만원이 들어 있었고, 아이의 손엔 강아지 인형이 전부였다. 메모 한 장 없었다. 깨어난 아이는 자기가 4살이라 했고, 이름도 말했다.

누가 놓고 갔을까? 아이도 대답이 없었다.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는, 여러 차례 의견 수렴 끝에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왜 하필이면 우리 교회였을까? 교회로 치자면, 우리 교회 주변에도 좋은 교회들이 많은데 말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믿기로 했다.

또 하나는, 이 아이를 놓고(어쩌면 버리고) 간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나, 그의 기대를 저 버리고 싶지 않았다. 차마 말은 못해도 잘 키워주었으면 하는 그 바람을 말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것도 물건도 아니 사람을, 그리고 아무런 기약도 없이 무책임하게 놓고 갔지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그래도 교회를 택했다는 것이 고마웠다.

아이는 교회에서 자랐다. 성도들도 아이를 키웠다. 때맞춰 옷 입히고, 신 신기고, 맛난 것 사주었다. 동네 의원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지 치료해주었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지나고… 꼭 3년 지난 어느 날 황혼녘에, 한 남자가 제 목양실로 찾아와 큰 절을 올렸다. 자기가 바로 아이를 놓고 간 장본인이며, 친 아버지라고 했다. 그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며칠 후, 헤어진 아내도 함께 오도록 해 모두 만났다. 부모도 울고 아이도 울고 저도 함께 울었다.

사연을 들어보았다. 생활고에 시달리자 아내는 '당신이 아이를 키우라'며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새벽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이를 무작정 우리교회에 놓고 간 것이다. '왜 하필 우리교회였냐'고 물었다.

네온에 비치는 교회 이름이 그냥 좋았단다. '나눔의 교회'. 아이와 함께 했던 3년 동안 아이가 자라듯 교회도 부흥했다.

아이에게도 교회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피난처가 분명했다. 그 때 일을 돌아보면,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교회에서 키웠다는 것이 지금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마지노선에서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교회'라며 찾아오는 자를 보듬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교회가 무엇이기에 상의 한마디 없이 자식의 앞날을 그렇게 맡길 수 있는 것일까? 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마지노선에서 '그래도 마지막 소망은 교회'라며 찾아오는 것은, 분명 교회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우리의 희망이다.

곽충환 목사 / 나눔의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