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3~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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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0일(목) 10:38

월-하나님 앞에서
본문 : 고전 10:31~33
찬송 : 552장

선서(宣誓)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럿 앞에서 성실할 것을 맹세함 이라고 되어 있다. 라틴어에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말도 선서와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코람은 앞에서(Before)란 말이고, 데오는 하나님(God)이란 뜻으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외적표현인 것이다. 이 말은 언제나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 선서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삶은 아니었는지, 교만한 삶은 아니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으로 선서할 수 있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선서하는 마음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 31절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인의 삶의 총체적인 목적이며 먹는 일과 마시는 일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인이 하는 모든 일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야 한다. '마태 수난곡'을 작곡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10살도 되기 전 부모를 잃고, 결혼 13년 만에 아내와도 사별했다. 그러나 그는 역경 중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작곡에 몰두하여 그 결과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한다. 본문 33절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했다. 나는  스포츠 중에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다른 경기에 없는 플레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자의 희생번트이다. 희생번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는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 32절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라고 했다. 이 말씀은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운동경기를 할 때 가장 매너가 없는 사람은 경기 룰을 어기고 거칠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인생경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더티 플레이(Dirty play)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요즘 기독교가 한국 사회 속에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속에서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거치는 인생이 아니라 기쁨을 주는 인생으로 살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고 이웃에게 기쁨을 주고 유익한 인생이 되도록 우리의 삶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승원 목사
푸른숲교회


화-기적을 일으킨 엘리사
본문 : 왕하 2:6~14
찬송 : 191장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다. 부유한 농부 출신이고 50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했다. 나아만 장군의 병을 고쳤다. 도끼를 물 위로 떠 오르게 하였다. 엘리사 선지자가 기적을 일으키는 위대한 인물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엘리야를 결코 떠나지 않았다.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한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니 떠나야 될 때가 되었다고 3번이나 말한다. 그때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꽉 붙잡았다. 당신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붙잡는다. 이 모습은 성도의 모습이다. 성도는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된다. 예수님을 꽉 붙잡아야만 한다. 마17:6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더라" 성도는 예수님 한분만 붙잡고,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둘째 성령이 하시는 역사를 갑절이나 요구한다. 이 말씀은 엘리사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함을 의미한다. 엘리사는 스승의 기적의 현장을 보았다. 갈멜산에서 하나님께 불을 구하여 제물을 태우게 하신일, 3년 반동안 가뭄을 선포한 일, 또 기도함으로 비가 내리게한 일을 잘 안다. 이러한 스승 엘리야 선지자의 능력을 갑절이나 요구한다.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초대교회는 오순절의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와 성령 충만으로부터 시작한다.
 
초대교회에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급한 바람, 불의 혀 같이 성령님이 강림하셨다고 하셨는데 이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를 의미한다. 이 역사를 통하여 초대교회가 굳건히 설수가 있었다. 오순절 이전에 제자들은 무기력하였다. 두려워하고 무서워 도망이나 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의 종으로 섰다. 이 시대에도 주의 종들이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말씀을 전하므로 신앙 회복, 성령님의 능력회복이 있어야 한국교회가 산다.
 
셋째 물을 쳐 갈라지게 한 후 건넜다. 엘리야가 물을 쳐 마르게 하고 그 위로 건넌다. 그런데 엘리사가 이와 같이 능력을 행한다. 엘리사도 요단 강물을 말리고,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소금으로 물을 치유하고 죽은자를 살리고 군대의 침공을 막아 내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는등 놀라운 기적을 나타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는 예수님과 사도들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능력의 종들이 이 민족 가운데 기적을 이루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님 신앙으로, 성령 회복하여 한국교회에 능력의 종, 기적의 종들이 나타나기를 기도드립니다. 엘리사와 같은 종들이 일어 나게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영식 목사
황성제일교회


수-열매 맺는 삶
본문 : 요 15:1~10
찬송 : 370장

사람은 누구에게서 어떻게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과 신앙이 결정된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바른 삶을 배우면 인격자가 되듯이 스승 되신 예수님께 배우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본문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고 했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 생각하기를 예수 안에 산다든지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을 부자유나 속박으로 오해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수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안되게 하는 비결이 된다. 5절 말씀을 보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다. 뜻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며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8절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비유이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거해 버리시고"(2),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4),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5) "열매를 많이 맺어야 제자가 된다"(8)고 했다.
 
나무는 관상수와 유실수가 있다. 관상수에서는 열매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유실수라면 당연히 열매가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는 유실수다.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는 포도주의 원료가 되는가 하면 열매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있어야 하듯이 성도에게도 열매가 있어야 한다. 전도의 열매, 기도, 봉사, 사랑,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 열매가 있는가?
 
9절에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고, 10절에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했다. 성도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배워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청빈, 검소, 절제, 근면, 관용, 겸손, 진실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본받지 않을 것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희생과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마디로 자기를 희생하신 사랑이다.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이다. 성도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 따르고 실천해야 한다. 성도로서 맺어야 할 가장 큰 열매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예수 안에 거하는 성도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따르고 실천하여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기 목사
정자교회


목-광야의 매력
본문 : 마11:7:~9
찬송 : 393장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실은 이 자유는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자유롭게 살지 못할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롭게 되려면 먼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한다. 그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광야다.
 
광야는 결핍 그 자체이다. 광야는 생을 지탱할 기본 조건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숲이나 꽃은 물론 마실 물도 없는 그곳, 태고의 적막을 담은 바람소리와 모래먼지뿐인 그곳, 도시문화에 익숙한 우리내들이 며칠은커녕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곳이 광야다. 그런데 그 광야가 매력이 있다. 왜일까? 광야의 존재 자체가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내 인생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광야는 자유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지금 까지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광야에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광야에는 두 얼굴이 있다. 인간의 고통이라는 얼굴과 하나님의 돌보심이라는 얼굴이다.
 
광야에서 확실하게 체득 하는 것은 자기 생의 유지를 위해서 자기의 당하는 고통을 제거하거나 줄이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통제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곳이 광야다.
 
우리는 어렵잖게 혹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광야에 초대를 받는다.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이기게 하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우리는 쉽게 그 초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광야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되고 불평과 불만을 먼저 쌓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이 반항이 거의 중독이 된 채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오늘 예수님이 하시는 세례요한의 평가를 통해 광야의 반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교정하신다.
 
세례자 요한은 실제로 요단 광야에 살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며 따라나서게 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례요한만 보았지 정작 광야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말하면 광야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세례요한의 삶과 사명은 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본능적 욕망은 내 울타리를 갖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내가 중심인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들을 벗고 자유롭게 되는 방법은 광야에 계신 하나님을 보는 것밖에 없다. 모든 결핍의 장소인 삶의 광야에서 오늘을 자유롭게 잘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해답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광야의 한 복판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아멘.

정여임 목사
아가페드림교회


금-너는 아니라고 하실 그 때에도
본문 : 삼하 7:18~29
찬송 : 330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지만, 거절당하는 아픔도 만만치 않은 아픔이다. 체면도 자존심도 포기한 간청이 한 마디 말로 거절당할 때 사람의 마음은 쓰리고 아프다. 게다가 거절의 아픔을 주는 그가 원수나, 핍박자가 아니라 "기도하고, 맡기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본문은 하나님께 소청을 거절당한 다윗의 이야기다. 사하 7:1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나는 백향목으로 만든 왕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장막 안에 있다"는 다윗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윗은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비하여 언약궤가 있는 성전이 너무 초라해 보여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린다는 거룩한 소원을 품고, 선지자와 상담도 했고, 허락까지 받았다. 그러나 정작 기뻐하실 줄 알았던 하나님께서 거절하신다.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은 "너는 아니다"라는 거절이었다.
 
우리가 열정을 품고, 소원하고, 기도하며, 헌신하고자 하는데 정작 우리의 헌신을 받으실 하나님께서 거절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을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다"(18) 거절당한 것이 너무 아프고 슬퍼서 따지려고 앉은 것이 아니다. "주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였다"(표준새번역)는 말이다. 오히려 감사드리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께 가려져 있도다"라고 탄식했던 시인의 고백처럼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한대로는 아닐지라도 사실상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늘 대답을 하고 계신다. 거절도 응답이다. 안 된다고 하신 것은 안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기 때문이고, 기다리라고 하셨다면, 더 좋은 길이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겸손함을 보였다(18하-20). 사람은 거절을 당할 때, 분노가 일고,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굽니까?"라는 질문을 드린다. 자신은 저 들판에서 양을 치던 이새의 아들 목동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거기가 자신의 출발점이었음을 겸손히 회고하며, 지금 왕의 자리에 앉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도 그랬다. 가시를 없애달라는 소원은 거절됐지만,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또 어떤가? 자기 땅에 오셨지만 거부당하셨다.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 백성들의 거부가 주님의 길을 막지는 못했다. 거절당하는 아픔과 좌절을 맛보아야 할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 지금 얼마나 큰 은혜 안에서 살고 있는지 감사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거절당하는 아픔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혁성 목사
송정교회


토-믿음으로 행한 것 기억하심
본문 : 히 11:17~19
찬송 : 546장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 얻은 귀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은 원래 이삭을 통해 많은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해주셨는데, 아브라함은 두 말씀이 상충되는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렇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을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것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랄타 해협에는 'No more beyond'라는 팻말이 있다. 여기가 지구의 끝이며 더 이상은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그 너머의 세계를 믿었다. 그리고 결국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믿는 자만이 약속의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신앙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근심, 걱정 속에 살아가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에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한다. 얼마 전 흥행한 '관상'이라는 영화 때문에 요즘 관상 성형이 성행한다. 얼굴을 바꾸어 성공하고 얼굴을 바꾸어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내일은 얼굴 모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능력이심을 믿는 믿음이 결국 우리에 최후 승리를 주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믿음의 사람이 아니면 단 한 줄도 할애되어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능력이 있는,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대단한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도 가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찾으시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을 주목하신다. 믿음으로 하는 말을 이루어 주시고, 믿음으로 보는 것을 허락하시고, 믿음으로 행한 것을 열매로 안겨주시는 분이다.
 
우리가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 없이 계획하고 행한 적이 얼마나 많을까? 당장 손해나더라도 믿음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실 것이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행했듯 오늘 하루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광식 목사
홍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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