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계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곽충환 목사
2014년 10월 28일(화) 15:46

유럽에 두 달 머문 적이 있다. 민들레 꽃 가득한 오스트리아의 초원은 분명 4, 5월 봄이었는데, 스위스의 알프스를 넘나들 때는 하얀 겨울이었다. 프랑스 남부의 해변에서는 비키니를 입은 한 여름을 만났다. 잠깐 동안 세 계절을 한꺼번에 만났다. 목회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사계절을 만날 때가 있다.

오전엔 발인 예배를 드렸다. 사랑하는 김 집사를 이 땅에서 마지막 보내며, 천국에서 다시보자 하였다. 점심엔 우리교회 이 집사님의 둘째 아들의 돌 예배를 드렸다. 건강, 지혜, 영성으로 잘 자라도록 축복했다. 저녁엔 이제 막 태어난 아가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여 급히 병원에 심방하였다. 태어나자마자 목사님의 사랑과 기도를 흠뻑 먹고 싶은가 보다.

그렇게 토요일 하루를 보냈다. 하루에 탄생과 죽음을 모두 보게 된 것이다. 봄소식이 화사하게 몰려 올 때쯤이면 결혼식 주례까지 보태진다.

어느 날은 아이의 탄생에, 돌 예배에, 청춘남녀 결혼식에, 병원 심방에, 그리고 장례식까지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인생의 사계절을 다 겪는 것이 목사의 삶이다. 자동차 안에는 늘 검정 넥타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가는 곳과 사정에 따라 그에 맞는 코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음을 추스르는 기도도 드리고, 소리 내어 웃는 연습도 한다.

시신을 만졌던 손으로 아이의 머리에 축복기도 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장례식 감정으로 돌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돌 예배 기분으로 병원 심방 가지 못한다. 넥타이를 갈아 매듯 목사인 내 감정도 바꾸어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함으로.(롬 15:15) 때론 5분 대기조처럼, 때론 연극하는 배우처럼 살아야 한다. 그래도 목사가 가는 곳마다 교인들이 위로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목사 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한다.

하룻날에 인생의 사계절을 보면서 흐르는 세월을 실감한다. 아가의 이름을 지어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결혼한다고 주례 부탁 받은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세 아이의 학부형이 되어 있다. 아직도 할일이 창창한 집사가 어느 날 암 선고를 받고 마지막 날을 맞기도 한다.

나이 드신 집사님의 장례식에서는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배우고, 늠름하고 아리따운 두 젊은이를 주례할 때면 함께 일구어갈 교회의 꿈을 읽고, 갓 태어난 아가의 이름을 지으면서 찾아오는 설레임은 차라리 신비이다.

봄날인가 싶으면 여름이듯 내 인생의 사계도 그렇게 나 모르는 사이에 신속히 지나갈 것이다. 정신없이 살다가 만나게 될 내 인생의 겨울은 어디쯤일까?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지금은 차마 보내기 아쉬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곽충환 목사 / 나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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