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27일~11월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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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1일(화) 15:01

월-참 잘했어요
본문 : 빌 4:14~16
찬송 : 291장


바울은 풍부에 처했거나 궁핍에 처했거나 항상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했다. 바울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바울이 엄청난 부자이거나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현 상황은 괴로움이라 말하며 이러한 괴로움에 있는 나를 물질로 돕는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에 함께 동참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칭찬한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연약한 이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진정으로 괴로운 처지에 있는 자와 마음을 같이하며 아픔을 나누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탈무드에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아이가 두 사람인가 한 사람인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유대인 랍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쪽 머리를 때려보아라. 그때 양쪽 머리에서 다 울면 두 사람이고 두 쪽에서 다 울면 한 사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약자와 병든 자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아버지의 아픔이 있는 곳에 함께 아파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

바울은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은 십시일반 바울의 그 필요를 여러 번 도와주었다. 서로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의 모습이었다.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재능과 물질, 건강과 우리의 입술로 주고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의 일부만 유산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교회나 사회단체에 이름 없이 환원하며 아름다운 본을 보이고 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일에 앞장서야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원칙적으로 자비량 선교를 하였지만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는 100마일이나 떨어진 빌립보에서 선교후원금을 받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데살로니가 지역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이 깨달은 지식을 돈을 받고 팔고 있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에 만일 돈을 받고 말했다면 다른 철학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오해 소지가 있었기에 비록 가난한 지역의 빌립보 교회지만 그들의 정성과 사랑을 기꺼이 받아 복음의 순수한 사역을 행하였던 것이다.

아픔, 고난, 눈물이 있는 곳에 함께 아파하며 울어주고 물질이 필요한 곳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물질을 나누며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우리의 기도와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 앞에서 '참 잘하였다'는 칭찬받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눈물이 있는 곳에 나의 눈물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차형익 목사 / 행복한교회


화-신앙생활의 목표
본문 : 신 6:4~9
찬송 : 200장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요단강 건너편의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에서 자자손손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을 받아 그 날을 장구하게 하며, 크게 번성하기를 기대하셨다. 그러면서 모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첫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 위에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우리의 예배 대상이요, 그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생명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여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긴다.

둘째,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신다.(신6:5.)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가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힘을 다하여 최고의 예우를 하며 섬기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하나님의 일을 우선해서 하며,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하는 생각과 몸가짐과 언어생활이 바뀐다.

셋째,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언제나 어디서나 부지런히 가르치라 하신다.(신6:7.)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먼저 자신의 마음에 새기고 이 아름다운 신앙을 다음 세대에 대물림하기 위해서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삶의 현장에서 배어나오도록 반복해서 자녀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그가 무엇을 보고 듣고 사고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나오고, 그의 관심과 열정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우리 삶의 주변에는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으며,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 살아간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위에 놓은 까닭이요” 듣고, 보고, 배운대로 실천하자.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은혜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침으로 대를 이어 주의 나라를 섬기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본용 목사 / 풍암양림교회
 


수-전진과 멈춤
본문 : 민 9:15~23
찬송 : 191장

모든 인간 속에는 전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전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우리 인생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가 '무엇이 전진인가'라는 것이다.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성경적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모세 오경의 율법서를 읽어가면 너무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임재와 심판의 상징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성막 위에 영광을 드러내시며 진행과 멈춤을 주도하셨다. 하늘과 땅이 철저히 연결되어 있다. 실로 인생이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에겐 진정한 전진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편견을 갖고 있다. 중심을 보지 못하고 외모로 취하고 인종 간, 지역 간, 세대 간 편견 때문에 더욱 큰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와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40세까지 문무의 높은 고지를 훈련 받아 대단한 실력을 갖추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기가 충만했다. 그러나 자신의 뿌리를 자각하고 학대받는 자기 민족의 고통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분노가 치밀었고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도망쳐 나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살게 된다. 모세 입장에서 광야의 무명 시절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은 달랐다. 그 시간이 진실로 모세가 전진한 시간이었다. 무명의 40년 동안 모세의 혈기는 누그러지고 겸손해지며 중심이 달라진 세월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시간들이었다. 80세에 부름을 받고 40년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 어려운 환경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는 확실히 달랐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때 모세는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다. 극한 위기 상황에도 그는 땅에 엎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원치 않는 고난의 풀무불에서 계속 전진했다. 그 영혼이 하나님을 닮아갔다.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것보다 승하였다. 하나님이 가면 따르고 멈추시면 자신도 멈출 줄 아는 믿음의 큰 어른이 되었다.

고난까지 환영하며 나아가자. 바울은 고난 당하면서 많은 동역의 벗들을 만났다. 고난은 영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하게 하고, 깊고 두터운 끈으로 함께 묶어 큰 하나를 이루어낸다. 고난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진실을 본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진다. 나아가 영혼이 맑고 순수해진다. 그토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진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주님을 닮아 가도록 이끌어 주시고 전진과 멈춤을 거듭하시며 은총을 베풀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대현 목사 / 영은교회


목-온유한 자
본문 : 마 5:5
찬송 : 425장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신 여덟 가지 복 중에서 세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품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말씀이기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무력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신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의도하시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투쟁은 쉽게 승리할 수 있지만 많은 적을 만들 수 있기에 언젠가는 가졌던 것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온유는 실제로 잃는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얻기 때문에 결국은 잃은 것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온유는 진정 복된 자의 모습이다.

그러면 온유의 성품이란 어떤 의미인가?

첫째, 온유(프라우스)는 동물을 길들인다는 의미다. 예컨대 명마는 극심한 갈증가운데 시냇물을 발견하고 최고의 속력으로 달려갈 즈음에 주인이 정지 신호를 보내면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말이라고 한다. 온유한 성도는 잘 길들여진 말과 같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함으로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온유한 자의 본을 보이셨다. 유배당한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력으로 유럽 대륙을 정복하려다 실패하여 이렇게 좁은 곳으로 유배당한 신세가 되었으나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의 온유한 사랑으로 온 세계를 지배하는 만왕의 왕이 되셨나이다."

둘째, 절제가 잘 이뤄지는 것이다. 힘이 있으나 힘을 힘으로 나타내지 않고 덕으로 나타내는 덕성을 말한다. 온유한 자란 오히려 강한 힘의 소유자다. 힘이 있지만 관용과 절제로 상대를 품어주고 양보하는 능력이다. 이삭은 그가 파놓은 우물을 그랄목자들이 빼앗고자 할 때 온유함으로 양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 땅들을 이삭이 차지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셋째, 성령의 열매이다. 온유는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성품이다. 한없이 거칠었던 자가 주님께 은혜를 받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화된 모습이다. 평양의 깡패였던 김익두씨가 은혜받고 목사가 되었다. 김익두인 줄도 모르고 그를 폭행했던 불량배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덕은 당신이 본다." 성령은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를 신의 성품으로 만들어 가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땅을 얻게 하신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복된 성품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온유한 성품을 주셔서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윤 목사 / 선교제일교회


금-앎의 지혜
본문 : 엡 1:15~23
찬송 : 293장

사람은 모두가 예외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아무런 차별도 없게 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음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신령한 복을 받은 에베소 성도들이 신앙과 사랑이 진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바울은 이들이 장차 더욱더 좋은 것을 사모하여 찾고, 사유하고, 물어보며, 알아가길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먼저,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선물로 우리를 구원하고 구속하기 위해, 창세전에 이미 선택하셨고 세상 속에서 영위해야 할 미래의 삶까지 인도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신약의 소망(엘피스)은 어떤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최종 목적지로 가는 도중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담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죽은 자를 살리고 살아있는 자들을 새로운 몸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약속과 관련된다. 그리고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밭에 뿌린 씨, 겨자씨, 보화 등의 비유를 통해 열매와 확장, 부풀게 하는 것, 귀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명있는 성도들은 변화되고 성장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그들의 삶 속에서 각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알고 체험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그 권능이 성도들의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계속 역사하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믿는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에로의 회복을 기도한다.

바울은 교회를 통해 반드시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드러날 뿐 아니라 그리스도는 만물을 완벽하게 세우는 과정에 계시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의 성도를 향한 사랑(그들이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도록 기도하는 모습)과 교회를 향한 바른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공의를 향해 나아가도록 길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의 내 모습과 교회와 사회를 향한 앎의 지혜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이끌어 내는 기도와 행동을 기대해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말과 행실로 드러나게 하사 머무는 곳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미재 목사 / 미스바군인교회


토-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본문 : 사 40:27~31
찬송 : 354장


이사야 40장은 별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망의 말씀, 희망의 말씀'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과 사람을 적나라하게 비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8절에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설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22~24절의 비유를 보면, 사람을 메뚜기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귀인들을 "겨우 심겨지고, 겨우 뿌려졌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은 존재" 그러니까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면 말라버리는 초개와 같이 연약한 존재라고 선언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당신과 사람을 비교하여서 사람을 무능력한 존재로 표현하시는 것일까?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진정한 희망, 진정한 소망'은 이렇게 연약한 사람을 의지하여서는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강한 것 같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 훌륭하여 들의 꽃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을지라도 사람을 의지해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음을 들려주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말씀을 듣고도 사람을 의지하다가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놓는다.

"하나님은 날 돌보지 않으셔! 내가 고통당한다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지 않으시는 것 같아"라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들의 풀과 꽃과 같은 사람들을 의지하다가 메뚜기 같고 초개와 같은 인간을 의지하다가 허무하게 무너지면 이런 불평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내리는 결론이 바로 31절이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으며,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한다."

진정한 희망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만을 앙망하고 그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주실 줄로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이다. 신앙이란 바로 이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간증의 삶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진정한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성국 목사 / 성내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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