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20~25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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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5일(수) 11:50

월-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자
본문 : 히 12:1~3
찬송 : 380장

사람의 크기는 공감의 크기라고 볼 수 있다.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고 웃는 자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아픔을 함께 나누며 고통을 함께 공감 할 수 있다면 그는 값진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정에서부터 배워가며 경험한다. 실로 가정은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의 산실이다. 우리는 각자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오늘 말씀처럼 먼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 더럽고도 무서운 죄가 삶을 망가트리고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빼앗아 간다. 모든 죄를 벗고 믿음의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가자.
 
그리고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주님은 믿음의 주인이시다. 생명의 원천이시요, 진리의 공급원이 되신다. 그분을 바라보면 금보다도 귀한 믿음을 공급 받는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꺼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사생자가 아니기에 때론 호된 징계를 해서라도 사랑으로 질투하시며 우리의 맘을 돌이켜 결국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을 승리케 하신다. 그분의 불타는 사랑이다. 우리가 믿음의 주를 바라보고 믿음의 주를 생각하면 은혜가 넘치고 그분을 닮아 온전케 되어져 간다.'바라봄의 법칙'은 귀중한 신앙원리의 영적유산이다.
 
주님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사람들은 멸시했고 조롱했기에 우리 주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셔야만 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다. 그런데 이 한분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이 건져졌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 자신을 거역한 자들을 인류 구원의 놀라운 길의 성취를 위해 참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우리의 푯대로 삼고 인내하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생명이다. 그분의 몸을 상하고 그 피값으로 산 존재가 되었다. 내가 귀한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모두가 존귀하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피차 허리를 굽히고 서로의 종 되어 섬기자.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 하지 말며,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 기억하며 주님만 바라보아 이 고달픈 죄악 된 나그네 여정을 거뜬히 이기는 은혜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넘치길 바란다. 여호수아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는 고백을 주님께 드리며 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때로 사람을 바라보다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저희의 믿음 없음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언제나 겸손히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대현 목사
/영은교회


화-애통하는 자
본문 : 마 5:4
찬송 : 96장

애통이란 막연히 슬픈 감정에서 나오는 울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우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만 잔뜩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초라함을 보고 탄식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경험 속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면서 탄식한 것이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가까이 하시며 만나주신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오늘날 우리시대에 가장 큰 불행이라면 막힌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교통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이다. 주님은 이 시대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 않는 시대라고 통탄하셨다. 심지어는 우리 속에서 생각과 마음의 단절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울고 싶어도 울음이 나오지 않고, 용서해야 하지만 용서되지 않는다. 잠을 자야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고통이다. 막힌 것을 뚫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애통하는 것이다. 눈물 흘릴 때 눈물이 없음을 애통해 하고,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되지 않음을 애통해야 한다.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가지 못함을 애통해야 한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불순종 했던 요나도 물고기 배 속에서 애통함으로 기도 드려 다시금 존귀하게 쓰임받았다. 애통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가져다 준다. 애통하는 자에게는 첫째, 하늘문이 열려지는 복을 주신다. 우리아를 죽인 다윗은 범죄한 이후에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받고 애통함으로 하늘문이 열려 주의 영이 임하심을 경험하고 최고의 성군이 되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자라"고 하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에게 기쁨의 단을 예비하시는 주님이시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벽을 향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통곡할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며 은혜의 문을 열어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되는 놀라운 복을 주신다.
 
둘째, 위로의 복이 임한다. 우리 의 삶속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어려울 때 돕는 자가 없고, 앞길이 막힐 때 열어주는 자가 없으며 슬퍼할 때 위로해 주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애통하면 반드시 위로해 주신다.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위로의 영으로 오신 주님은 오늘도 애통하는 자를 찾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애통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영혼을 더욱 깨끗하게 하옵소서. 진정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사 주님 주시는 평강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윤 목사
/선교제일교회


수-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본문 : 행 16:22~32
찬송 : 357장

사도행전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성경 속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최고의 순간이 기록된 책이다. 교회공동체가 세워지고,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견고하게 세워져 열정과 교리가 조화를 이루어 내면의 질적인 안정과 부흥으로 신실한 사람들이 세워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활발하고 초월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의 확산과 선교의 지경이 넓어지고 택함받은 성도들의 생애 최고의 순간들을 엿보게 된다.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는 아시아 지역 선교를 예수님의 영이 원치않음을 알고 새로운 사역지를 환상을 통해 지시 받은 후 확신 가운데 마게도냐로 가게 된다. 복음전도는 사역자의 의지만이 아니라 성령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점치는 여종 하나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 그때 주인들이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그들을 붙잡아 심하게 매를 맞게 하고 감옥에 가둔다. 이들은 한밤중에야 겨우 정신이 들어 일어나 하나님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마음을 합한 동일한 신앙의 사람들이었고, 가혹한 폭행을 당했을지라도 고난 중에 기도하며 찬미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남은 자신의 모든 힘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 노래 속에 모든 것을 올려드렸다. 삶의 문제에 쫓겨 염려와 불안이 엄습할 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와 찬미를 들은 죄수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모습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이런 행동들은 큰 지진을 일으켰고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겨졌다. 그들이 순수하게 기도와 찬미를 드렸을 때 일어난 하나님의 반응이다. 옥문이 열린 것을 본 감옥의 간수는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한다. 신자와 불신자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간수는 무서워 떨며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느냐"고 묻는다. 이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대답을 받고 그 집의 모두가 주의 말씀을 듣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는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 선한 영향력을 주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만든다. 사랑할 수 없던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불편하던 관계가 풀어지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다름의 특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변화를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오늘의 기도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게 하실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미재 목사
/미스바군인교회


목-하나님만 섬기는 가정
본문 : 시 128:1~6
찬송 : 540장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 연구팀은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 각자 따로 식사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양학적으로 균형잡힌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가족 전체가 모여서 식사를 하면 다양한 음식이 조리되어서 나오는데, 개인이 따로 식사를 하면 인스턴트식품 등 불충분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또 가족이 식사하면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이 적게 먹는 채소, 과일류가 많이 섭취되고 한국같은 경우 현미같은 곡물류를 더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너무도 바쁘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가정은 참 중요하다. 그래서 가정이 복을 받는 것은 너무도 소중한 일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복이 있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첫째는,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가정이다(1-2절).
 
성경은 일확천금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 믿으면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 예수님 믿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도박신앙이다. 그 대신에 손으로 수고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한 몸을 주셨고 온전한 정신을 주셨다면 그것으로 노동과 공부를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온 가족이 하나님 섬기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다(3-4절).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같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미래가 밝은 가정'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포도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갖는다.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부부가 되자. 또한 감람나무는 그 잎이 빛이 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자녀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다.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이들어 세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자녀들이 믿음의 혈통을 잇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세 번째로, 교회를 언제나 사랑하는 가정이다.
오늘 말씀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복이 선포되는 곳을 말하고 있다. 게다가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곳이다. 지금, 만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
 
바로 교회다. 하나님의 복이 선포되는 이 교회를 사랑하자. 그리고 이 교회에 집중하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어떤 복을 선포하실지 온 가족이 집중하자. 이것이 참 복있는 가정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을 돌보시사 복있는 가정이 되게 하시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성국 목사
/성내동교회


금-아멘 신앙으로
본문 : 고후 1:18~20
찬송 : 321장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말씀을 다르게 표현하면 "나는 언제나 아멘으로 살았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 참으로 '아멘'을 많이 하며 살아간다. 아멘은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요, 삶의 신앙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울의 '아멘신앙'은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하며 그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며 교회를 개척한 영적 아버지와 같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교인들은 바울을 업신여겼고 무시했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예, 아멘"이라고 한다. 아멘은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의미다. 바울은 자신을 모욕하고 박해하며 비방하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아멘'하였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예'하고 '아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그 근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여기서 미쁘다는 것은 '참으로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나도 그 믿을만한 하나님 앞에서 '아멘'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또한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기에 그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아멘으로 고백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로 그 그리스도 앞에서 나는 아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나의 아멘은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내게 가장 큰 유익이며, 그것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씀 앞에서 아멘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고 건강마저 잃었음에도 이렇게 '아멘'으로 고백한다. 요셉은 팔려가면서도 감옥에 가면서도 '아멘'했다. 다니엘은 사자굴 앞에서 '아멘'한다. 다윗은 원수 앞에서 '아멘'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도 '아멘'하셨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선언하는 승리의 아멘이다.
 
진정한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 앞에서 내 인생을 긍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아멘신앙'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아멘이요 충성스러운 참된 증인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 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날마다 모든 상황 속에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며 '아멘신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차형익 목사
/행복한교회


토-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본문 : 민 14:1~10, 28
찬송 : 585장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12지파를 대표하는 12명의 정탐꾼을 약속의 땅에 파송하여 40일 동안 살펴 본 후에 보고를 받는다. 그들은 같은 기간, 동일한 지역을 돌아보고 와서 호평과 악평을 늘어놓았다. 악평하는 이들은 "그 땅이 좋기는 한데…"라며, 견고한 성읍이 있어서 안 되고, 신장이 장대한 자들 때문에 안 되고, 자신들이 메뚜기 같아서 안 된다고 하였다. 그 땅에 발도 들여놓기 전에 이들은 패배하고 하고 만 것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은 안중에도 없다. 단지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비교하고 판단하여 안 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 결과 온 회중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고 불안에 떨게 만들었고, 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밤새워 통곡하게 한다. 또한 지도자들을 원망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지 아니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지금까지 수고한 모든 일들에 대하여 후회하게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메뚜기의 기질을 가지고 악평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하는 다른 사람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반면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가지고 불안해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안심시킨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며 하나님의 보호하신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크고 견고해도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눈앞에 펼쳐진 힘들고 어려운 장애물들을 극복하였다.
 
이것을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모두가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세워주면서 살리는 믿음의 언어를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가정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자.
 
오늘의 기도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고통을 받으며 일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소망 중에 인내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본용 목사
/풍암양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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