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필요 없어...오직 바람은 '삼평리의 평화'뿐"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5.약자의눈물/(6) 청도 송전탑 할머니의 눈물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10월 14일(화) 16:42
   
▲ 송전탑 앞에서 함께 한 청도 사평리 할머니들과 백창욱 목사, 환경운동가.

【청도=표현모 차장】"스무살에 시집 와서 이곳서 50년 넘게 살았습니더. 손이 갈고리가 되도록 일해서 겨우 집과 논마지기 장만했는데 송전 케이블이 연결되면 엄청난 전자파 때문에 여기서 살 수 있겠습니까? 또 자식들은 고향집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보상 같은 거 필요없습니더. 그냥 여기서 살 수 있게만 해달라는 거예요."
 
소싸움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청도군. 평생 농사일밖에 모르던 청도군 삼평리의 할매들이 평생의 업인 농사까지 뒷전으로 미루고 매일 송전탑 공사장으로 출근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사장 출입구 앞에는 대여섯 명의 할매들이 공사가 재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의자를 펴고 앉아 문을 가로 막고 있다. 할매들은 이렇게 올여름 땡볕을 이겨내며 그 자리를 지켰다. 더위를 겨우 보냈나 싶은데 이제는 겨울 추위와도 싸울 생각을 하니 주름이 더욱 깊어진다.
 
할매들은 공사장 옆에 아예 움막까지 지어놓았다.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기습적으로 공사가 시작될까봐 그곳에서 점심밥을 지어먹고, 밥 먹기가 무섭게 다시 나와 자리를 지킨다.
 
이 할머니들은 평생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해 본 적이 없단다. 그저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우면서 남들처럼 자식들 교육 못시켜준 것을 평생의 미안함으로 안고 있는, 그래서 자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밭뙈기, 허름한 집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 어머니들이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서 50년 넘게 삼평리에서 인생을 보낸 할머니들은 자기들의 터전을 관통하는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 송전탑이 세워지면 34만5000볼트의 고전압이 흐르며 전자파를 내뿜게 된다. 과학적으로는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전자파가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그리고 송전탑 인근의 땅은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매매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자녀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 할머니 만나러 오는 것도 서로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평생을 산 내 몸 같은 땅에 철탑이 박히고 전선이 드리워지는 것은 내몸에 이물질을 넣는 것처럼 싫단다.
 
"한전이 2006년 1월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했다는데 주민 몇명이 참여하긴 했나봐요. 사실 그 설명회가 있었다는 것을 안 주민들도 몇 명 없어요. 그리고 참가했다고 시골 주민들이 뭐 압니까? 송전탑이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건 설명 안하니 모르잖아요. 대부분 주민들은 2009년 3월에서야 송전탑이 들어온다는 걸 알았어요.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있는데 한전이 치킨하고 뭘 사왔어요. 그 자리에서 공사를 하러 오겠다는거예요. 그때서야 주민들이 부랴부랴 반대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반대 운동을 시작했어요."
   
 

 
2007년 귀농해 마을에서 가장 젊은 부녀회장 이은주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이후 한전은 마을 발전기금 등을 제시하는 등 여러 모양의 당근을 제시했다. 돈 문제가 결부되자 끈끈했던 마을 주민들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 필사적이 되었다.
 
결국 2012년 4월 삼평리에 22호, 24호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면서 반대측 할매들은 필사적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우리는 우리 땅 지켜서 여기서 살려고 반대하는 거야. 한전에서 공사하려고 나무 벨 때 우리는 나무 끌어안고 있었어. 그때는 새벽 4시 30분부터 한사람 한사람 나무 껴안고 안 있었나.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 다 반대했는데 지금은 반대하는 사람 몇 명 안남았다. 경찰에서 영업 방해를 하면 벌금 내야 된다고. 내가 못내면 아들, 안되면 손주들이 내야 된다카니까 겁이 안나나?"
 
최남이(78) 할매가 당시를 회상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공권력 앞에서 할매들의 힘은 미약하기만 했다. 2012년 송전탑은 모두 세워지고, 터만 파놓고 중단된 23호기도 올해 7월21일 갑작스럽게 공사를 재개해 완공해 이제 선만 연결하면 되는 상황이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투쟁이 '바위에 계란던지기' 같은 일이었음에도 할머니들은 악착같이 공사 반대운동을 펼쳤다. 용역들에게 끌려내려오고, 기절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경찰서장이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불법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봉투를 돌렸을 때도 할매들은 그 봉투를 고스란히 대책위원회에 가져와 이를 언론에 고발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의 반대운동으로 고령의 할매들은 지쳐가고 있다.
 
"우리 전부 업무 방해라고 고소 당하고 벌금도 물고 했어. 평생 갈 일 없던 경찰서, 법원도 다 가봤다고. 유치장에서 하루 자보기도 하고 국회도 가보고 별 일 다해봤다. 늙어서 오만 구경 다해보네. 철탑 때문에 구경 한번 잘하고 있는 셈이지. 더군다나 우리가 나이가 많아서 힘들긴 해. 한 명은 몸이 안좋아 딸내 집에 가고, 90 넘은 노인은 몸이 불편해 못나오고, 또 누구는 남편이 아파서 못나오고 그래. 이제 몇 명 안남았어. 이제 겨울이 올텐데 걱정이야. 움막에서도 겨울은 엄청 춥거든."
 
대도시로 전기를 전송하기 위해 설치되는 송전탑 때문에 34만5000볼트라는 고압 전선을 머리 위에 이고 살게 될 할매들의 눈물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목숨 같은 땅 지키려는 할매들 외면할 수 없어"

함께 송전탑 반대운동 펼치는 백창욱 목사

   
 

"삼평리 할매들을 처음 뵌 건 2012년 성탄절이었어요. 대구 경북 지역의 목회자들이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하는 거리의 성탄예배를 드리러 이곳에 왔는데 그때 할매들은 너무 지쳐보였고, 예배도 생전 처음이라 어색해하셨어요. 그때 약속했어요.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도와드리겠다고. 그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함께 하게 됐네요. 하하."
 
성탄예배 드리러 왔다가 할머니들의 절박한 사정을 알게되어 지금까지 할매들과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백창욱목사(대구새민족교회)는 현재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일주일에 몇번씩 대구와 청도를 오가며 할매들과 함께 하고 있다.
 
백 목사는 "이 땅은 할매들이 손이 나무껍질이 되도록 고생하면서 겨우겨우 마련한 땅인데 이들에게 땅은 자식들에게 그나마 부모로서의 면을 세울 수 있는 목숨 같은 땅"이라며 "부모를 기억할 수 있는 터전, 재산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할머니들의 생명과도 같은 땅에 송전탑이 들어서면 할머니들의 자존심이 무가치하게 되는데 이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땅, 고향, 모성애에 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타산만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면 안된다"며 "처음에는 송전탑 문제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여러 일을 겪고, 기도하는 중에 이건 민주주의와 정의, 불의의 문제라는 것을 더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교회가 고통받고 힘없는 소수를 위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며 "기도와 후원의 손길이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부탁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