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박수칠 때 떠나라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4년 10월 08일(수) 11:48

 
무엇인가 새 일을 시작할 때, 흔히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과정도 순조롭고 결과도 잘 마무리되는 법이니까요. 제대로 된 사람은 첫 단추를 잘못 채울 리 없고, 설령 잘못 채웠다 해도 금세 다시 고칠 수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단추를 제대로 채우기 힘듭니다. 결국엔 모든 단추를 다 풀어낸 뒤에 첫 단추부터 다시 제대로 채워야만 합니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 단추를 채우는 일이 / 단추 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 잘 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 누구에겐가 잘 못하고 절하는 밤 / 잘 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 그래, 그래 산다는 건 /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

천양희 시인의 시 '단추를 채우면서' 중 일부입니다. 첫 단추부터 올바르게 채워 나가라는 시인의 마음을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은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만큼 '잘' 성취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모 재벌 그룹의 신임 대표가 취임 후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가 책상 서랍을 열자 봉투 4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중 한 봉투에 '맨 먼저 열어 볼 것'이라고 쓰여 있었고, 다른 봉투에는 ①~③까지 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맨 먼저 열어 볼 것'이라고 쓰인 봉투를 개봉해 보니 그 편지는 전임 대표가 쓴 것이었습니다. 편지에는 "나머지 3개의 봉투는 어려울 때 당신을 도와 줄 것임. 위기 때마다 순서대로 하나씩 열어보기 바람."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신임 대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서랍 속에 봉투를 그대로 넣어두었습니다. 집무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날 무렵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언했고 이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지고, 마침내 이를 해결하지 못한 대표가 문책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노동조합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는 중에 그는 서랍 속의 봉투를 기억해 냈습니다. 그가 첫 번째 봉투를 열자 "전임자 탓으로 돌리라." 그 방법은 신통하게 적중했고,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또다시 파업이 일어났고 그는 두 번째 봉투를 찾아 꺼내 들었습니다. 이번엔 "모든 것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라." 이번에도 봉투의 조언 덕분에 그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파업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이번엔 당황하지 않고 세 번째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자, 이제 봉투 4개를 준비하게나."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분수에 맞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자리도 있습니다.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②번 봉투를 개봉할 때까지 후임자가 그 자리에 맞는 역량을 갖게 되길 기대했을 겁니다. 첫 단추가 혹 잘 못 채워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여 제대로 옷을 갖춰 입기를, 그래서 마지막 봉투는 열어보지 않기를 기대했을겁니다. 그러나 결국 그 봉투에 의존하게 될 때는 스스로 떠나라는 메시지였던 것이죠. .

역사를 보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물러남으로써 명예를 지킨 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주변에는 자신의 '능력'을 간과한 채 자리에 연연하는 지도자들을 보게됩니다. 굳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읊조리지 않아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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