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자국

[ 연재 ] 프리즘

류영모 목사
2014년 09월 23일(화) 14:00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그의 발자국 소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운과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것을 '교황 신드롬' 혹은 '교황앓이'라고들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발자국의 의미를 교황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겠기에 그 발자국을 개신교 목사인 내 입장에서 더듬어 보고자 한다.
 
오래전 독일 사람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쓴 '아우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본 예술작품에서 풍겨 나오는 품격이나 영감을 일컫는 말이다. 모조품이나 복사품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진품, 명품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말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 아우라의 붕괴를 한탄하기도 했다.
 
필자는 개신교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한 복음과 구원의 진리는 개혁교회 안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교회의 신학이 가톨릭 신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성경적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 사실에 추호도 의심이 없기에 개신교 목사로 살아감에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고 이 확신을 필자는 매주일 설교로 외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경적 교회의 '아우라'는 우리 개혁교회라는 말이다.
 
필자는 가톨릭 신학을 연구한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이번 교황 방한과 함께 드러난 그들의 교리만 보더라도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 동의할 수 없는 주장들이 너무나 많았다. 마리아 무오설과 승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름, 죽은 이들을 위해 마리아에게 기도함, 교황 무오설과 수위권,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선을 행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이다.
 
이처럼 분명 복음의 '아우라', 구원의 진리는 우리에게 있는데 종교의 품격과 향기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우리 국민이 맡은 것은 웬일일까? 발터 벤야민의 한탄처럼 개혁교회 '아우라의 붕괴'를 한탄해야 한단 말인가? 언론보도가 과장되고 균형감각을 잃어 국민들이 속은 것이라고 하기엔 교황과 우리 국민 사이에 이루어진 교감과 감동이 너무나 진했다.
 
'명량'이란 영화가 진정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국민의 눈을 끌어 모았듯이 종교의 향기를 그리워하던 국민의 마음을 교황의 낮은 행보가 집중시켰던 것이다. 이번 교황의 방한이 아시아 교세 확장을 위한 바티칸의 마케팅 전략의 일부요, 계획된 쇼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것이 '쇼'라면 분명 거룩한 '쇼'였다.
 
이제 곧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게 된다. 루터시대보다 어쩌면 더 절실한 종교개혁의 요구 앞에 우리는 서있는지도 모른다. 루터가 '교리의 개혁'을 이뤘다면 우리는 '삶의 개혁'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황의 발자국에 흔들릴 한국개신교회가 아니다. 지금 가톨릭교회의 성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성장했고 더 막강한 영향력과 교세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제 '아우라' 교회답게 구원의 진리와 함께 종교의 품격도 잘 세워가야 할 요청 앞에 우리는 서있다. 교황에게 집중된 시선을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께로 돌이키고 개혁교회 '아우라'를 회복해 가야 한다. 

류영모목사/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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