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살리는 리더십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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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23일(화) 14:00

금주섭 목사
WCC 선교국 총무

 
안디옥은 로마제국의 속령인 시리아의 수도로서 제국 안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은 세 번째로 큰 대도시로 다종교 다인종 다문화 사회였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안디옥으로 피신한 성도들이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믿는 사람이 늘어나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였다. 이에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였고 그는 사울과 동역하여 큰 무리를 가르쳤고 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사도행전은 13장에 이르러 초대교회는 교회사적 전환점을 맞는다. 역사의 무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진다. 안디옥 교회가 본격적인 선교를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를 뽑는 일이었다. 다섯명의 지도자를 뽑았는데 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바나바는 헬라계 유대인으로 사이프러스 출신이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로서 그 대표성과 권위를 가지고 초기 안디옥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였지만 안디옥 교회의 초대 지도자로 뽑힐 정도로 인정받았다.

두 번째 지도자 시므온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는 아프리카 니제르 출신의 흑인 노예였다. 그의 선출 소식을 접한 안디옥 사회 아니 전 로마 제국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로마시대의 노예는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존재요 파리 목숨같은 운명이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는 이 흑인 노예를 그들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하였다. 복음의 역사는 세상의 질서와 가치, 신분과 제도를 송두리째 변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다.

루기아는 땅끝이라고 여겨지던 저 멀리 변방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왔다. 애당초 처음부터 선교적 교회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아테네라고 불리던 구레네에서 잘 교육받고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딱히 지도자로 뽑힐만한 세력이 안디옥에 없었다.

마나엔은 앞선 세 지도자와는 달리 아주 부유한 배경에 출신도 화려했다. 헤롯의 젖동생으로 궁궐에서 자라나 권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고위층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적격자였다. 사실 그는 팔레스타인 출생의 헬라인이었고 그의 지위나 돈을 선거에 이용하지 않았다. 지금껏 누구도 정통 히브리파 유대인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사울이 그 자리를 메꾸어 주었다.

어찌보면 잡탕같은 이 다섯명의 지도자들이 이방교회를 세우고, 세계선교의 센타로 발전시키고, 복음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그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리 총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다섯 명의 리더십의 다양성을 주목해야 한다. 각기 다른 출신과 신분, 문화와 인종, 지역적 배경에서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 총회도 목회자 중심의 단일한 리더십이 아니라 여성과 평신도, 선교사와 교사, 청년과 장년들이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은사를 맘껏 활용할 수 있는 은사 공동체로러서의 리더십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 둘째, 민주적 체제였다. 어느 한사람의 제왕적 리더십이 아니라 집단 지도력에 의해 안디옥 교회가 움직였다.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 이미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의 위상은 베드로에 필적하고 있었는데 그는 맨 마지막에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겸손하게 등장한다. 한명의 리더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는 언뜻 효율적으로 보여도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부패하게 될 때 그것을 보완할 장치가 없다. 셋째 영적 지도력이 강조 되었다. 안디옥 교회가 그들의 리더를 선출하는 기준은 딱 두가지였다. 예언자적 지도력과 가르치는 능력이었다. 그 외의 세상적 가치는 아무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넷째, 선교적 오리엔테이션이 확실하였다. 행정과 치리, 경영과 제도 그 어느 것도 선교적 의제를 우선하지 않았다. 그레코 로마 세계 전체를 그들의 교구로 생각하였으며 제국의 구석구석에서 소외된 민족들을 대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장시켜 나갔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희생적 지도자들이었다. 사도들을 따라 모두 주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순교자들이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을 보며 안디옥교회의 청년들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구하지 않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나설 수 있었다. 제99회 성총회를 맞으며 한국교회를 살리는 첫걸음을 참된 리더십을 다시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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