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극복의 이해

[ 성서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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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23일(화) 13:59

최인기 교수
서울장신대학교ㆍ구약학

십자가의 고난은 주님께 4중고의 무거운 짐이었다. 죽음의 공포, 모든 인류의 죄의 무게, 죄인으로 심판받으셔야 하는 수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흘 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어두운 영적인 죽음, 이 모든 고통이 십자가가 되어 예수님을 짓누르고, 찌르고, 찢었다. 그러나 주님이 그 큰 고난을 향해 가실 때 아무런 의혹 없이 가지는 않으셨다. 주님도 "제가 이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아버지! 이 잔을 피할 수 없을까요?"라고 아버지께 묻는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예수님도 고난 앞에서 이렇게 연약하셨다는 것이 세상에서 같은 고난당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고난에는 이 위로가 먼저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고난을 넘어서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셨다. 십자가가 다른 이로서는 불가능하기에 '땀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면서 가셨다. 그렇게 힘들게 십자가를 향해 끝까지 가셨다. 주님께서 고난을 앞두고 죽음보다 힘든 결단을 하셨던 것을 볼 때,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 뒤에는 이처럼 힘들게 치러주신 대가가 있었다. 이를 아는 사람은 겟세마네에서 베푸신 주님의 이 은혜에 마음 깊이 감사하게 된다. 고난의 때에 이 은혜에 감사가 먼저다. 그러나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이미 겟세마네에서 먼저 죽으셨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고 아버지의 뜻이 서도록 그렇게 고난 앞에서 죽는 것이 고난 극복의 모범답안임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난이 클수록 본능적으로 강해지려 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죽어야 한다. 고난 자체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한발 물러서서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뜻을 찾고, 순종과 실천으로 먼저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그렇게 하셨다. 이것이 고난 앞에서 비겁해지는 자기를 죽이는 것의 의미이며 고난극복의 진정한 지혜이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이미 고난을 이긴 사람이 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롬 6:4; 갈 2:20). 그 죽음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여 자신을 쳐서 죽이는 정직함,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우리가 고난 앞에서 자신을 쳐서 죽이고 나면, 십자가 저편 천국 소망이 더 뚜렷해지며, 이 땅에서 천국생활을 진정으로 앞당겨 산다. 그러면 고난 안에도 주님 가까이 계시니, 죽을 만큼 힘든 고난도 영광이 된다. 그만큼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는 가벼워진다. 그러고 난 후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도 자기부인 없이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실 수 없었다는 사실에 뒤늦게 놀란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을 겟세마네에서 진정으로 만나게 되며,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에서 아버지 앞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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