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에 세월호 아픔 새기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운다"

[ 교계 ]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 동행취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8월 29일(금) 16:33
   
 

실종자 귀환과 4.16 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며 떠나는 '생명과 정의의 도보순례'가 오현선 교수(호남신대)와 본교단 산하 신학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난 11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본보 기자는 지난 20~21일 만 24시간 동안 도보순례에 함께 동참하며 동행취재를 했다.

【전주, 익산=표현모 차장】 '생명과 정의의 도보순례' 열흘째인 지난 20일 정오, 기자가 전주의 효자동교회(백남운 목사 시무)를 찾았을 때엔 이미 점심식사를 마친 순례단원들 대부분은 달콤한 낮잠에 빠져 있었다. 매일 25~30km를 걸어온 피로가 이미 쌓일대로 쌓인 순례단원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이날 오전과 점심 사이에 이곳 저곳에서 동참자들이 늘어 순례단의 수는 46명으로 늘어났다. 처음 시작부터 주축이 된 호남신대 학생들에 한일장신대, 대전신대, 부산장신대의 학생들이 속속 참여했고, 목회자정의실천평화협의회(목정평) 소속 목회자 4명(정금교 강은숙 노경심 서은정)이 함께 했다. 전주성원교회에서는 담임 유운성 목사가 교인 10명과 함께 "우리 고장인 전주에서라도 함께 하겠다"며 찾아왔다. 교인 중에는 이팔규ㆍ장효근 장로 부부가 9살 손자 김시온 군과 함께 참여해 눈길을 모았다. 총회 사회봉사부 이승열 총무도 점심시간에 예고 없이 찾아와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꿀 같은 휴식시간은 항상 짧게 느껴지는 법. 3시가 되자 순례단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출발했다.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순례단은 우비를 입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순례단은 아직도 바닷 속에 있는 10명의 얼굴을 새긴 조끼를 입고,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행진하는 이들은 앞 사람 등에 새겨진 실종자의 얼굴을 보며,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수색작업에 진전이 있기를 기원하며 마음 속 바람을 하늘에 올린다. 순례단은 실종자 중 두명을 선정해 하루동안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기도한다. 이날은 박영인 군과 양승진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날.
   
 

 
머릿 속으로 생각하는 30km와 실제로 나의 발로 땅을 밟아 전진하는 체감의 30km는 별개다. 이 과정 속에서 물집 잡힌 발을 바늘로 터뜨려가며 걷는 이들도 있고, 건강 탓에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4~5km를 전진하고, 15분여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걷는 것을 반복한다.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 많은 비가 아니라면 여름 땡볕에 걷는 것보다는 한결 낫다. 적어도 일사병, 혹은 열사병, 탈수현상 등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6시에서야 이날의 종착지인 전주 동성교회(이재군 목사 시무)에 도착한다. 이재군 목사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나서서 참여해주는 청년들이 고맙다"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격려의 악수를 청한다. 식사와 인근 목욕탕에서 샤워를 마친 후 9시 30분경 저녁기도회가 시작됐다.
 
방 한가운데 촛불과 십자가가 놓여지고 인솔자인 오현선 교수의 인도로 진행되는 기도회에서는 성경묵상과 찬양, 기도, 그리고 묵상한 것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일정에 모두 지쳐 있어 저녁 기도회 시간을 줄이려고도 해봤지만 오히려 힘든 날일수록 기도회의 감격은 더해져 기도회 시간이 늘어나곤 한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이날도 여러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묵상을 나눴다.
 
그중 이날 처음 참가한 호신대 학생은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이번에 처음으로 이러한 활동에 동참했다"며 "왜 나는 진작에 성경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많은 반성을 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날도 11시가 다 되어서야 기도회가 끝났지만 집행부는 다시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이미 새벽 5시 20분. 10분 후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21일의 하루 일정이 시작됐다. 오늘 오전에 걸어야 하는 거리는 15km. 밤사이 광주벧엘교회(리종빈 목사 시무) 청년 10여 명이 합류해 순례단은 더욱 힘을 얻었다.(담임 리종빈 목사와 부목사들도 이날 오후 합류해 순례에 동참했다.)
 
오전 6시 30분 다시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단은 한마음으로 다짐의 말을 되뇌인다. "모두 돌아올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저녁 기도회 모습. 하루 일과가 끝난 피곤한 시간에도 이들은 기도의 시간을 잊지 않았다.

# 실정자 귀환과 '특별법 제정' 위한 걸음

지역교회의 참여와 후원 이어져

'생명과 정의의 도보순례'는 이번 세월호 사망자 신승희 양의 사촌오빠 신민호씨(25)와 사고 첫날부터 팽목항에서 봉사를 한 약사 이승화 집사(우수영제일교회ㆍ44)가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는 도보순례를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사촌동생의 시신을 수습한 뒤 다시 팽목항에 내려와 봉사를 하던 민호 씨는 "기도하던 중 우리 승희의 단짝 친구 은화가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승희에게 다시 내려가서 은화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약사인 이승화 집사 또한 "도보순례를 하는 분들이 계시긴 한데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하는 도보순례는 없어 실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순례 배경을 밝혔다.
 
기독교인인 신민호씨와 이승화 집사는 팽목항에 봉사하던 중 기독교연합부스를 자주 찾았고, 마침 8월부터 제자들과 함께 봉사를 하고 있는 오현선 교수(호남신대)를 만나 자기 둘만이라도 도보순례를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들의 짐은 고스란히 오 교수의 몫이 됐다. 곧바로 오 교수는 실종자 귀환과 유족들의 뜻이 반영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생명과 정의의 도보순례'를 기획하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가족들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 교수의 제자들이 가장 먼저 동참의 뜻을 밝히며 실무에 참여했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던 본교단은 이들을 후원키로 했다. 특히 사회봉사부에서는 이들의 식사와 숙소를 후원해줄 교회를 각 지역마다 물색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본교단 교회들은 기꺼이 귀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례단을 맞아주고 있다.
 
순례단은 3가지 기도제목을 갖고 한발 한발을 내딛는다. 오늘도 순례단은 '실종된 10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유족의 뜻이 반영된 특별법 제정', '하나님의 생명과 정의의 가치가 성취되는 사회와 교회가 되길' 기도하며 걷고 있다.
 
오현선 교수는 "이 순례를 통해 남을 비난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히 이 순례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것들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되고,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생명과 정의를 향한 각자의 순례를 떠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11일 팽목항에서 출발한 이들은 오는 31일 안산 화랑유원지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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