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이 본질이다

[ NGO칼럼 ] NGO칼럼

마상욱 대표
2014년 08월 25일(월) 19:02

중ㆍ고등학교시절 한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대학생이 되면서 이러한 평화민족론에 비판적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우리 민족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렇다고 다른 나라를 도와준 일도 없지 않는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요즘 인천공항에 나가보면 유니폼을 입고 해외봉사를 가는 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약 10년 전부터 국제봉사활동은 교회가 갖고 있는 특별한 일이 되었다. 마치 문화적으로 과거 교회의 '문학의 밤'이 청소년활동을 주도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헤비타트, 월드비전, 기아대책 등 유명한 봉사기구도 모두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선교회 중에도 봉사를 통한 사역을 하는 자생적 단체들도 만들어져 왔다. 어떤 교회는 이러한 대외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큰 은혜를 경험했다. 우리는 이러한 선한 전통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예전에 교회가 주도했던 봉사활동도 지금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밖으로는 많은 민간 NGO의 설립으로 청년들의 열정과 기성세대의 물질을 나누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이 교회가 아닌 곳에서도 자신의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장들이 열렸다. 즉 경쟁상대가 생긴 것이다. 안으로는 교회의 모든 활동이 선교에 집중되어 대사회적인 오해를 만들었다. 교회의 봉사가 선교와 동일시함으로 생긴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독론적 접근보다 삼위일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하나님의 사랑 안에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신앙의 유일성을 지키면서 시대적인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전파이지만 복음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도 요한의 사랑의 신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접근할 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어줄 때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다른 이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표현이 봉사이다.

이러한 봉사(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이다. 초대교회의 다섯 가지 역할은 예배, 전도, 가르침, 봉사와 친교였다. 우리 교회의 DNA 속에는 봉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이유이다. 작게는 교회와 주변에서 크게는 민족, 나라 그리고 인종을 초월해서 우리가 만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그 사랑의 실천이 교회의 정체성을 설명할 것이다. 진리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변화가 진리를 설명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직업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닌 삶으로 진리를 보여준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진리를 말하는 교회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교회로 선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살 길이다.

마상욱 대표 / 사단법인 청소년불씨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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