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25~3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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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0일(수) 14:48

월-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본문 : 롬 5:1~4
찬송 : 438장

세상에서 오는 환난은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온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오는 환난도 있지만 사람을 통하여 오는 환난도 있다. 부모를 통하여 형제와 친구들, 이웃을 통하여 오는 어려움이 있다.
 
성경에 요셉을 보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다.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실 때 괴롭힘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늘 본문을 보면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고 한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환난 중에 즐거워 할 수 있을까? 환난이 오는데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
 
첫째로, 성도는 환난이 와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겨낼 수 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성도는 환난이 와도 자기의 힘으로, 사람의 도움으로, 물질로 해결할 수 없다.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져주시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도록 도우신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이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힘든 일이 많아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건져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절대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기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다.
 
둘째로, 성도는 환난이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성도는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줄 알게 된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환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인내이다. 인내를 통하여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귀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게 하신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우리를 통하여 믿지 않는 부모, 친척, 친구, 직장 직원들이 복을 받는다. 요셉은 환난 중에도 남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많은 사람에게 복의 통로가 되었다.
 
셋째로, 성도는 환난의 끝을 볼 줄 안다. 환난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까? 인내이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바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이는 길이라도 그 길의 끝이 심판과 책망이라면 그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길이라도 그 길의 끝이 생명과 칭찬이라면 그 선택은 옳은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끝을 보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온 인류가 죄에 오염되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끝을 보았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오늘의기도
 
어떠한 어려움에도 인내하며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성민 목사
/울산호계교회


화-놀라운 역전의 은혜
본문 : 창 25:19~34
찬송 : 310장

오늘 본문은 이삭과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을 출산하고,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리브가는 임신 중에 뱃속에서 다툼이 일어나서 "내가 어찌할꼬"라고 여호와께 묻자, 태중에 두 국민이 있다는 사실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놀라운 말씀을 듣는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는 단순히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이다. 그 이름의 뜻처럼, 야곱은 붙잡는 자, 비열한 자, 속이는 자, 욕심 많은 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큰 자 에서가 아니라 작은 자 야곱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는 놀라운 역전의 현상이 일어난다. 은혜란 공로가 없고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값없이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은 의인이 되며, 자기 의에 빠진 의인은 죄인이 된다. 부자는 지옥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간다.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만, 자기 의에 빠져 있는 맏아들은 정작 아버지의 풍성한 은혜에서 스스로 배제된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가 되며, 미련한 자는 택함을 받고 지혜 있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한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선택의 주권적 자유를 계시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푸시는 자유다. 하나님의 자유하심에 대하여 불공평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예를 들어, 혼기가 가득 찬 한 여인에게 마침 흠모할만한 이상적인 남자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였다고 치자. 그런데 이 여인의 반응을 보라. 왜 나를 선택했느냐, 세상의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삼 년 동안 따지기만 한다면 이 여인은 제정신이 아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인가.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에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가엾은 일이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자기 의와 공로에 집착하여 은혜와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교만을 회개하자. 교만에서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비방과 분열 등 모든 악이 나온다. 왜냐하면 교만은 죄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 이대로가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임을 고백하자.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우리의 부부관계, 자녀관계, 교회생활, 직장생활에 놀라운 역전의 은혜가 발견하게 된다. 셋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를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가게 하며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파하자.
 
오늘의 기도
 
낮은 자를 높이시는 주님의 역전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지금 이대로가 최고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이웃에게 복된 소식의 전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덕영 목사
/삼성교회


수-생각 밖의 생각으로의 나아감
본문 : 행 10:1~2
찬송 : 368장

사람은 생각한다. 우리 생각은 창조적이며 자유롭게 보인다. 그런데 그 생각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가만 보면 거의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얻은 정보들은 주로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곳, 또 좀 넓혀 보면 여행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런 정보들을 공급받아서 우리 생각의 내용으로 삼는다. 뭔가 깊은 것을 찾고, 그 내용을 잘 정돈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생각의 나래를 펼쳐가기보다는 대체적으로 누군가로부터 들은 생각들을 붙들고 인생을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지혜로운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축적된 것,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능력 안에서 조금 새롭게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의 생각 너머에 더 큰 것이 있다. 더 큰 생각이 있다.
 
자신의 생각 밖에 있는 그 넓은 생각을 자신의 삶의 내용으로 끌어들여서 한 시대 속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고, 그 꿈을 역사에 남긴 사람이 있다. 백부장 고넬료가 그 예이다. 그에게도 한계가 있었고 제한이 있었지만 그가 생각 밖의 생각으로 인도되었을 때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았는지를 본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총독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고넬료는 그렇게 힘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첫째는 구제하는 일이며, 둘째는 기도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보통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라고 얘기하는데, 가만히 보면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접하고자 하는지라." 고넬료는 시간이 없을 만도 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시간을 내서 기도하고 있다. 오히려 구제를 한다. 왜 이러는 걸까? 이 사람의 생각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기도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 밖의 생각, 그 생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수양이 아니다. 기도는 자기 사고를 탄탄하게 만들어 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도 성경 안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러 나아가는 길이다.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드로를 만나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신다. 고넬료는 바로 이 자리로 나아와, 주의 영이 그에게 충만한 기쁨을 누린 것이다.
 
우리도 생각 밖의 생각으로 나아가는 능력 있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주님 주신 계획 안에서 주님이 이끄시는 경륜 안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선미 목사
/예지교회


목-하나님의 때
본문 : 행 7:17~40
찬송 : 90장

유대인들은 스데반에게 거짓증거로 성전과 율법에 대한 모독 혐의를 씌워 공회 앞에 세웠다. 그러나 스데반은 천사와 같은 얼굴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한다.
 먼저 아브라함 요셉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주신 것을 잊어버린 교만하고 비뚤어진 선민의식을 비판했다.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늘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고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비판한다. 오늘 스데반이 증거한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 우리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430년, 모세가 숨겨져 길러진 석 달, 동족을 죽이고 도망쳐 미디안에서 보낸 40년, 이 모두를 '하나님의 때'라고 기록하고 '찼다'고 표현한다. 각 시간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 때가 차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흘러가는 시간, 의미 없이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 그것은 쌓여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이룰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을 통해 모세 안에 겸손과 순종을 빚으셨다.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는 유일한 도구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듯이 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비워짐과 낮아짐을 훈련받았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비워짐과 낮아짐의 훈련이 필요하다. 모세는 바로의 딸의 아들로 왕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광야로 도망한 40년 동안 의지할 곳 없는 나그네가 됐고 겸손과 순종을 훈련받았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겸손과 순종은 세상의 어떤 훈련이나 교육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도록 우리 안에 겸손과 순종을 훈련해야 한다. 겸손과 순종이 훈련되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말씀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의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한시도 그분의 백성을 잊으신 적이 없다. "내 백성이…괴로움을 받음을…보고…탄식하는 소리를 듣고…구원하려…(34)."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내뱉는 우리들의 신음과 탄식을 하나님은 듣고 계신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내 백성'이라고 불러주신다.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이다. 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 차마 기도하지 못하는 순간 외치는 외마디 탄식도 주님은 듣고 계심을 기억하자. 오늘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우리 안에 순종과 겸손을 빚으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해성 목사
/거성교회


금-때를 따라 돕는 은혜
본문 : 히 4:14~16
찬송 : 440장

하나님은 언제나 신비한 방법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신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항상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은혜라는 뜻이다. 항상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때에 필요한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때를 따라 하나님의 도움을 얻으려면 먼저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본문 16절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다. 여기에 '담대히'라는 말은 '자유'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나간다는 뜻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만인제사장직'을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기에 모든 성도들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핵심은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으로부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긍휼하심을 받아야 한다
 
본문 15절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분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2장 18절 말씀처럼 주님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분이시기에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은혜 받는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 일 앞에 실망하지 말자. 오로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시며 나아오길 바란다. 하나님은 꼭 필요할 때 도와주시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와주신다.
 
마지막으로, 굳게 잡아야 한다
 
히브리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고향을 떠나고, 일가 친척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더러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중에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기자는 믿음을 붙드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본문 14절 하반절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든든히 붙들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어떤 유혹과 시험이 와도 아무리 낙심되고 절망된 일이 있더라도 믿음의 도를 놓치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함을 잊지 말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살길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믿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세일 목사
/고산동부교회


토-사랑의 빛으로 물든 사람
본문 : 요일 2:3~11
찬송 : 428장

우리의 딜레마는 믿음과 행함의 불일치이다. 언행일치는 왜 어려운가?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삶을 살았던 성인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그들이 신행일치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한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은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주님을 믿는 것이 증명된다. 사도바울 또한 이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 싸움을 통해 자신 안에 악이 존재하며, 어둠이 신행일치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빛이신 하나님의 조명 속에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
 
본문은 말씀을 지키는 자, 말씀대로 행하는 자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된 사람'이라고 한다. 이 말인즉 하나님의 사랑으로 흠뻑 물들었다는 말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빛이 우리를 물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온전해지며 붉게 물든 삶,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의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빛과 사랑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하나님의 빛의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안에 물들었는가는 우리의 행실로 나타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어둠에 있다는 반증이다. 사랑의 빛에 물든 사람은 이웃을 향해 사랑의 빛을 발산한다. 우리가 어둠의 터널을 뚫고 빛의 세계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안에 머무는 기도,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물드는 기도 그리고 분노로 불끈 움켜쥐었던 주먹을 펴서 기도 손을 만들고 드리는 기도 외에 다른 길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물들 수 있도록 십자가의 핏빛으로 물들 수 있도록 주님 안에 머무는 기도를 드리자.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모든 것이 주의 사랑의 빛으로 흠뻑 물들여지게 하시고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사랑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치석 목사
/생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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