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무너질까' 한숨만...판자촌엔 분노 깊어가고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5. 약자의 눈물/달동네 구룡마을의 여름나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8월 19일(화) 11:26
   
 

서울 강남의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 강남의 대표 부자동네 중 하나인 타워팰리스와는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에는 1,100여 세대, 2,100여 명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한여름 더위 속에 하루 하루 견디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최근 서울시와 강남구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추진 중인 재개발이 전면 백지화 되면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자는 지난 13일 구룡마을을 찾아 지역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 재개발 무산으로 마음에 상처

 
마을 입구에서 만난 75세의 김금례 할머니(가명)는 재개발 무산된 것에 마음이 많이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김 할머니는 정부에 대해 "멀리 있는 남의 나라는 도우면서 자기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왜 안돕느냐"며 "몸만 성하면 청와대로 쫓아가서 대통령이라도 만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25년간 구룡마을에 살았다는 김 할머니는 "건물이 오래되고 너무 열악해서 장마만 오면 누구 집 할 것 없이 내려 앉을 상황"이라며 "하늘이 도와 지난해와 올해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내려 앉은 집은 없었는데 이대로 방치해두면 많은 집이 무너져 내려 큰 사고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할머니에 따르면 2년 전에는 비가 많이 와 두 집이 무너졌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1100여 세대 중 집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가구가 50여 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낮에는 집이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어 나무 그늘로 나와 앉아있는다"고 말했다.
 
재개발 무산에 대해 많은 이들이 한탄을 하고 있지만 재개발이 결정되어도 이들의 걱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74세의 한 할머니는 이 점에 대해 한숨을 쉬며 하소연했다.
 
   
 

"개발이 되면 15~17평 정도의 아파트가 나오지만 월 15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어떻게 냅니까? 여기에 관리비 및 각종 세금을 내면서 견딜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지금은 월마다 나가는 돈은 없으니까 살만 해요. 차라리 돈으로 보상해줬으면 좋겠어. 그 돈 가지고 시골이라도 가서 살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할머니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재개발은 반드시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 집들이 모두 눅눅하고 축축해요. 이런데 살아서 그런지 몸이 성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 다 환자라고. 여름이면 더워서 집에 있을 수도 없어요. 열대야에 이곳 한번 와봐요. 사람들 너무 더워서 집에 못 있고 다 밖에 나와 있어요."

# 교회에서 심방 오는 것도 큰 부담

 
구룡마을은 총 8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이중 한 지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본교단 M교회에 출석하는 권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68세의 박홍주 권사(가명ㆍ68세)는 민영개발에 반대하며 재개발을 무산시켰다는 이유로 구청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박 권사는 "재개발이 무산된 것에 실망해서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을 어제만 두 사람 만났다"며 "저야 신앙이 있어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사는데 일부 주민들의 분노는 너무 깊어 옆에서 보기 안쓰럽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실 우리는 투기 목적으로 온 사람들을 자체적으로 1000세대 가려내고 이곳에 발을 못부치도록 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재개발 시 임대료 등의 비용 문제는 어려운 집의 경우 제도적으로 더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등 자체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박 권사의 속 깊은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함께 남매를 키우고 있다는 박 권사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호흡기 질병에 잘 걸린다"면서 "우리 시어머니가 작년에 기관지염으로 돌아가셨는데 남편도 심한 기관지염을 앓고 있고 나머지 3명 다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교회 생활을 하는데 생기는 애로점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이런데서 비참하게 사는 모습 보이는게 남 부끄럽고 창피해요. 자존심도 상하고요. 이런 자격지심은 나이가 드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심방 때가 되면 남 부끄러워 하고 싶지 않아요. 젊었을 때는 큰 맘 먹고 목사님과 성도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렸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심방도 오시지 말라고 했어요. 사실 몇 년 전 심방예배 드리고 나서 교인들이 사심 없이 하는 말일텐데도 마음에 걸리고 상처가 되더라구요. 괜히 혼자 시험에 드는거죠. 사실 오늘도 아침에 설겆이 하면서 울면서 기도했어요. 이제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인데 이런 곳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거냐고…."
 
이내 박 권사의 눈이 붉어졌다. 그녀는 자녀들에 대한 걱정 어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 아들은 36살인데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했어요. 딸은 자기가 노력해서 대학도 전문대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고 좋은 곳에 취직도 했어요. 그런데 가슴이 아픈 것은 둘 다 결혼은 커녕 누구 사귈 생각도 못하는 거예요. 구룡마을에 산다고 하면 누가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귀려고 하겠냐면서 아예 연애를 포기해버리더라구요. 지난해 갑자기 말 잘듣던 딸이 울면서 왜 아빠 엄마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하고 살아야 되냐며 언제까지 여기서 살거냐고 말하더군요. 딸과 함께 엉엉 울어버렸어요."
 
여름을 나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박 권사는 "이곳의 위생이 좋지 않아 모기가 너무 많고 악취와 더위가 너무 심하다"며 "공중화장실의 경우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른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녀는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교회에는 잘 사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우리 심정을 이해하기는 어렵겠죠. 사소한 말에도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 있거든요. 우리는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것을 밝히기 싫어 움츠러들 때가 많아요. 하나님 앞에서 돈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오고 가는 말에도 상처를 받을 때가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 더 배려하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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