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잘되는 복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고일호 목사
2014년 08월 18일(월) 16:01

가끔 교인들이 "목사가 되어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잘 되어도 배 아프지 않은 직업이라 좋다"고 답한다. 나에게 있어서 목사됨은 늘 감사하고 좋다.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목사의 직임은 항상 다른 사람이 잘되도록 축복하는 일이다. 주일 예배 강단에서부터 가정 심방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목회자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축복기도가 있다.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부탁하는 것 또한 축복기도이다. 이렇게 남이 잘 되기를 바라고, 남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직업이 바로 목사라는 직업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목회자의 세계에도 경쟁이 있다. 다른 교회보다 내 교회가 더 부흥하길 원하고, 다른 교인들 보다 자신의 교인들이 더 큰 복을 받기 바라는 욕심이 있다. 잘 나가는 동료 목회자를 시기하며 폄하할 수도 있다. 경쟁심과 비교의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회의 열매는 사람의 눈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주인이며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평가되는 것이기에, 양적 수치나 세상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비록 자신의 목회지를 부흥하는 큰 교회로 만들지는 못했을지라도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한 명의 진실한 복음의 신자를 만들어낸다면 그가 받은 복 또한 큰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복이 있다. 내가 잘 되는 복이 있고, 남이 잘 되는 복이 있다. 나만 잘 되는 것은 반쪽짜리 복일뿐이다. 형제가 여럿인 교인들이 하는 말 중에 자신보다 못 사는 형제가 시도 때도 없이 와서 도와 달라고 할 때 화가 난다고 한다. 형제의 정과 사랑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어려울 때 마다 도와 달라 손 내미는 뻔뻔한 모습과 혈육을 나눈 형제라는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다 보면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평안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잘 되는 복을 구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잘 되길 구해야 한다. 나도 잘 되고, 남도 잘 될 때 다 같이 복됨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늘 외치는 구호 중에 하나가 바로 '상생'이다. 상생이란 무엇인가? 너와 내가 같이 복을 받고, 같이 잘 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상생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갑을관계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방도 복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상생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신의 복만 생각하기 때문에 상생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진실로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잘 되기를 간구하는 기도부터 해 보라. 상생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교황 방문으로 들썩이고 있다. 모두들 환영하고 기대하는 분위기인데 교회만 어색한 모습이다. 천주교와 경쟁하는 입장에서 환영하는 편에 들 수도 없고, 사회 분위기상 홀로 반대할 수도 없다. 이럴 때는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 상책이련만 어떤 보수 교단에서는 천주교의 이단성을 언급하며 반대 집회까지 열고 있다.

안 그래도 최근 한국 천주교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번 교황 방한으로 더 힘을 얻을 것이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것이다. 그러나 한 번 통 크게 생각해 보자. 그들이 잘 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잘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잘 되는 사람 옆에 있을 때 잘 되는 비결을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교황 방한에 한국사회가 열광하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우리에게도 큰 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황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고일호 / 목사 ㆍ 영은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