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

[ 성서마당 ]

김병모 교수
2014년 08월 12일(화) 15:33

감정보다 행동이 중요해

김병모 교수
호남신학대학교ㆍ신약학


예수님은 '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막 12:30~31). 그래서 우리도 사랑하려고 나름 애를 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라'는 말을 들으면, 이것을 곧바로 감정과 연결시킨다. '사랑한다'를 '좋아한다, 마음에 든다, 보고 싶다, 같이 있고 싶다' 등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감정적으로 나를 사랑하는(좋아하는)만큼 감정적으로 이웃을 사랑하지(좋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이 이런 사랑이라면, 우리 중에 과연 누가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때는 내 남편이나 내 아내조차도 나 자신만큼은 사랑하지 못하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을, 모든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쁜 사람들도, 심지어 원수들까지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43~44). 그런데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대로라면, 어떻게 원수를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원수가 좋다면, 그는 더 이상 원수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감정적으로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로마서 13장 8~10절을 보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하는 방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내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방식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웃을 죽이거나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이웃의 것을 탐내거나 이웃의 아내를 유혹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이 정도라면, 우리도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로마서 12장 19~21절에서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는' 방식은 '원수가 목마르면 마실 물을 주고 배고프면 먹을 음식을 주는 것'이다. 일단 이 정도라면 우리도 원수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이 감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감정의 차원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웃의 것을 빼앗지 않고 이웃에게 내 것을 나눠주는 행동의 차원이 사랑의 핵심 본질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랑은 '말과 혀로'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한 사람에게 내 소유를 나눠주는 '행함으로' 하는 것이다(요일 3:17~18). 옷과 음식을 나눠주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과 마찬가지로(약 2:15~17), 내 것을 나눠주는 행함이 없는 사랑도 죽은 사랑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16장 1~4에 나오는 연보는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아주 좋은 역사적인 실례이다. 마게도냐, 아가야, 아시아, 갈라디아 지방의 바울교회들은 '있는 힘을 다해'(고후 8:2) 구제금을 모아서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교인들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같은 교회의 교인들을 사랑하고, 같은 지역의 이웃들을 사랑하고, 북녘의 동포들을 사랑하고, 세계의 가난한 자들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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