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학교가 아니다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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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2일(화) 15:24

배한숙 목사
대한기독교교육협회 총무


한국교회의 교육은 '학교형 시스템(Schooling System)'을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교회 내 곳곳에서 '학교 또는 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해마다 학기를 만들고, 교사를 임명하고, 교재를 선택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교회학교도 그중의 하나다. 이름도 교회 '학교' 또는 주일 '학교'다.

교회마다 교육부(교육위원회)가 있다. 교장도 있고 부서도 있다. 학생, 교사, 학년, 반, 교과과정, 진급, 졸업 등의 용어와 구조들도 일반 학교와 똑같다. 교단에는 교육부(교육국)가 있고, 그들은 심혈을 기울여 교육 정책을 만들고 교사 교육 및 교재를 개발, 공급,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효하다. 한국교회의 모든 학교는 일반 학교를 표방만 할 뿐 진정한 의미에서 '학교형 시스템'의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교실이 없다. 재난 중이거나 피난 시절을 제외하고 반마다 교실이 없었던 학교는 없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학교들은 아직도 각각의 반이 수업을 진행할 교실이 없다. 한국교회의 학교들 중 그나마 나은 편에 드는 것은 성인들을 중심으로하는 주중 공부반이다. 그들에게는 기도실이든 자모실이든 어떻게든지 각반에 교실(?)이라는 공간이 제공된다. 안타깝게도 교회의 학교들 중에서 가장 비학교적인 곳이 교회학교다. 그들은 예배당 또는 교육관의 넓은 곳에 여러 학년, 여러 반이 한꺼번에 모여서 웅성웅성 거리며 '떼거리 수업'을 한다. 교사실이나 성가대석을 차지한 교사는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 중에도 교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학생들의 수준과 교과의 내용에 따라 그것에 적합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시설과 설비가 갖추어진 공간을 교실이라고 부를 때, 한국교회 중에서 단 몇 개의 교실이라도 온전히 갖추고 있는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될까.

둘째, 수업이 없다. 이것은 교사들의 수준과 준비, 또는 교재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교실의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이다. 교실이 없으면 수업이 없다. '학교형 시스템'이라면 그렇다. 매 시간 충실하게 준비해서 열심히 수업하는 교회학교 교사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이지 그는 다른 반의 수업(?)을 방해하는 훼방꾼일 뿐이다. 그 선생님 옆 자리에서 어느 반이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교실이 없고 수업이 없을 때, 좋은 교재는 오히려 골칫거리가 된다. 알고, 느끼고, 행하게 하는 완전 교재. 우수한 이론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학생 주도적 교재. 시대를 읽고 미래를 준비한 미래형 교재. 이런 교재보다 단순한 교재가 낫다. 간단하게, 교사가 일방적으로 요약해 주거나 설명해 주고 끝낼 수 있는 교재가 훨씬 유용하다. 지금의 교실과 수업 상황이라면 말이다.

교회는 학교가 아니다. 교회 공동체는 학교 공동체와 근본이 아주 다르다. 우선 구성원의 성격이 다르다. 당연히 공동체의 목적과 목표도 다르다. 신앙은 생활과 분리된 전문기관으로서의 학교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입학도 진급도 졸업도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교회는 아무나, 아무 때나 들고 날 수가 있다. 그것을 규제할 강제력도 없다. 필요치도 않다. 그리고 근대적인 학교 교육이 탄생하기 전에도 신앙 공동체는 훌륭하게 신앙을 가르쳤고, 전승해 왔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학교'를 좋아한다. 그래서 백약이 무효하다. 학교도 아닌 것을 학교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해법을 찾으려 한다. 어떤 처방도 무효하다. 아니, 위약(僞藥)이다. 때문에 좋은 교재를 만들면 만들수록, 좋은 교과과정과 교육방법을 제시할수록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학교가 아닌 신앙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교실도 수업도 없는 허무학교(虛無學校)를 헐고 우선 한 칸의 교실이라도 온전히 만들어 보려고 힘과 뜻과 마음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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