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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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2일(화) 15:13

월-힘이 미치지 못하면
본문 : 레 5:7~13
찬송 : 546장

성경을 펼쳐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아끼시는지를 깨닫게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나온 후 그들을 데리고 광야의 시내 산에서 1년 동안 머물렀다. 그 1년 중 5개월 20일 동안에는 법궤를 만들었고, 그 나머지 기간에는 율법을 받았다. 그 율법의 상당 부분은 제사에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법도를 다섯 가지로 정해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행해주기를 원하셨다.
 
첫째, 제사는 번제이다. 번제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생명헌신'의 의미를 담은 제사이다. 자기가 가진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태워드리는 제사이다. 둘째, 제사인 소제는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로 자기가 농사지은 곡물의 일부를 취해 그것을 태워드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재산헌신'의 뜻의 담겨 있다. 세 번째로 화목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과 화목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서 짐승을 잡아 내장은 하나님께 태워 바치고 짐승의 몸통은 이웃들과 나눠 먹는 제사이다. 네 번째로 속죄제는 하나님 앞과 이웃 앞에서 죄를 범한 경우 그 문제를 잘 해결하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마지막으로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을 범했거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이웃의 재물을 손해나게 했을 때 손해나게 한 것은 되갚고 거기에 5분의 1을 더해 변상하면서 용서를 구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이처럼 번거롭고 복잡해 보이는 다섯 가지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고 싶으셨던 하나님께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하신 방법이다. 또 그들이 이웃과 함께하는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자 정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설계하시고 실천해 가심에 있어서 그 안에 우리 인생들에게 전해주시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 하나가 있다.
 
제사를 드릴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따라 수송아지 같은 짐승을 한 마리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형편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경우에 대해 답을 주신 것이다. 낮추고 낮춰서 곡물 한 움큼이라도 쥐고 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상황과 형편을 고려하여 제사법을 정해주신 것이다.
 
레위기를 깊게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 하루도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공평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용서하시며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지 절절히 알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선미 목사
/예지교회


화-고난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
본문 : 행 27:1~12
찬송 : 382장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전을 더럽혔다는 근거 없는 비방이었다. 결국 바울은 선동하는 무리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벨릭스 총독에게 호송되었고 벨릭스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그를 구금한다.
 
2년이 지나 새로운 총독인 베스도가 부임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의 자격으로 황제에게 재판을 요청하고 베스도는 법에 따라 그를 로마로 보낸다. 이제 로마로 가는 바울의 마지막 여행이 시작된다.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이었던 두 사람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그래서 정당한 이유 없이 바울을 구금한다. 그들 앞에서 바울은 당당하게 호소하고 변론한다. 그리고 더 높은 권위인 로마 황제에게 항소한다.
 
요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정당하게 변론하고 호소하는 일들은 비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불의한 세상에 대해 세상의 권위가 침묵한다면 우리는 더 높은 권위인 하나님께 호소해야 한다. 바울의 여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분명 하나님의 뜻을 따라 로마로 가고 있는데, 상황은 왜 이리 어려울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라는 의문과 함께 금방 포기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간다. 시선과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에 있어서 상황을 바라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도 있다.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생겨날 수도 있다.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우리는 그 고난과 역경을 주시는 하나님이 무자비하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는 불의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실까? 아니다.
 
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 앞에 그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고, 말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도 동일하게 찾아오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그 일들을 겪는다. 만약 바울이 배가 더디 가고, 여정이 늦춰지는 상황을 통해서 여행을 포기하거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라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위대한 복음이 로마에 이를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과의 관계성 안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반드시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때로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의 선하심은 영원하시다.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해성 목사
/거성교회


수-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본문 : 시 84:1~7
찬송 : 384장

주변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언젠가 변질되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는 행복이 참된 행복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행복이 마음에 있는 시온의 대로를 통해 끊임없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온을 향한 대로가 마음에 열려야 한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먼저, 항상 사모하게 된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인은 주의 궁정을 사모함으로 그 영혼이 쇠약해졌노라 고백한다. 너무 사랑하기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생명이 끊어질 것만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하는가? 사모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사모하는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로 행복하길 바란다.
 
둘째, 항상 찬송하게 된다. 본문 4절에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했다. 비록 어려운 상황 속에 있지만, 아무 길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는 외모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고 고난 중에서도 주를 찬송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형통할 때 노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는 자는 항상 주를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다. 최악의 상황에도 주를 찬송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기도하게 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힘들고 어려워도 주의 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얼굴을 살펴보신다고 본문은 약속하고 있다. 성도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답답한 일로 낙심하며 억울하게 버림당하는 일을 만났는가?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가지시길 바란다. 기도하면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눈물 골짜기에 샘을 주실 것이다. 이른 비의 복을 허락하실 것이며 힘을 얻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최고의 행복과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되어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입고 능력을 얻으며 응답 받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세일 목사
/고산동부교회


목-모든 것을 걸어라
본문 : 막 10:17~22
찬송 : 314장

영생의 길을 찾고 있는 한 부자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웃사랑의 실천에 대한 계명을 말씀하셨고, 부자는 옳거니 하면서 그 말씀을 덥석 물어 버린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여기서 영생을 주제로 한 대화가 끝났다면 부자는 덩실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으리라.그러나 예수님은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말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이에 부자는 안타깝게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근심하며 돌아갔다.
 
예수님과 부자 사이에 오간 대화의 내용은 '사랑의 실천'을 매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부자가 율법적 조항을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사랑의 투신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전 존재를 예수에게 투신하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은 결정적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이 사람의 전 존재를 요구하고 있다. 영생이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 일단 주님 안으로 두 발을 떼어 놓는 행동, 일단 강을 건너는 행동, 그 단순한 순종(본회퍼), 자신의 전 존재를 주님께 내어 놓는 투신이 있어야 된다. 그때서야 주님과의 관계가 시작된다.
 
우리의 신앙은 모호한 경계 앞에 서 있다. 부자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자신의 삶을,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영생의 문제를 풀려 하는 것처럼, 우리의 것을 내려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전 존재를 주님께 내걸지 않고 문제를 풀려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듯,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놓지 않고서 어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나'라는 존재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 안으로 뛰어 들어오기를, 우리가 모든 걸 버려두고 주님과의 관계 속으로 몸을 던져 넣기를 원하고 계신다.
 
지난 한때의 헌신이 아닌 '지금'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주님께 투신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없인 우리의 행위는 영혼 없는 사랑, 온 몸을 던지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윤리적 조항을 지키는 율법적 사랑의 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오늘의 기도
 
내가 행했던 그 무엇보다, 지금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놓고 뛰어 들게 하소서. 주님 안에 나를 던져 넣게 하소서. 주님 사랑으로 영혼 깊이 물들게 하시고 참 사랑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치석 목사
/생극교회


금-못 자국이 있는 삶
본문 : 딤후 2:1~8
찬송 : 352장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유럽의 에디슨 노벨은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죽음의 상인 노벨 사망'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실은 한 기자가 형 루드비그 노벨의 죽음을 보고 오보를 낸 것이다. 노벨은 사건을 통해 삶을 심사숙고하게 되었고 재산을 정리하여 노벨상을 만들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삶인가?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자국이 남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자신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말하고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기를 당부하고 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디모데는 세상적으로 약한 사람이었다. 학벌, 가정형편, 기질적으로 약했지만 사도바울은 그 약함을 보충하려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하라고 하였다. 기도와 말씀과 믿음에 강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철, 능력, 힘을 더 하시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에게는 새 힘을 주신다.
 
둘째로,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고 당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가르쳤던 것처럼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을 세워 복음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 복음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삶으로 보여 주시고 제자들을 세우셔서 훈련시킨 것처럼 말씀으로 훈련시킨 충성된 사람을 통해 한 영혼 속에 잊혀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을 남기기를 원하는 것이다. 섬김과 나눔의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을 가까운 가족, 친척, 이웃에게 전하라 하신다.
 
셋째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당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3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좋은 병사, 경기하는 자, 농부 가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가를 치르며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은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계신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포기하지 않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주님의 못 자국을 증거하는 삶을 살자.
 
오늘의 기도
 
주님 한 평생 살면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구원받는 자가 많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성민 목사
/울산호계교회


토-예수님과 성경
본문 : 눅 24:25~35
찬송 : 202장

필자는 감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구원의 은총, 최고의 선물인 배우자, 조국 대한민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감사드린다. 하루 일곱 번씩 말씀 때문에 주님을 찬양한 다윗에게 배운 것이다. 교회가 교인에게서 성경을 빼앗아갔다고 비판하면서 기독교 사상가 키에르케고어는 "성경책을 교인들에게 돌려주라"고 외쳤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외침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성경과 멀어지고, 성경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채 소리만 요란하게 나는 껍데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멀어졌던 성경을 다시 손에 들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성경을 사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 본문에는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제자들은 처음부터 부활신앙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동행하셔서 성경(선지서)을 더디 믿는다고 책망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셨다.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졌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바른 믿음을 준다. 기적은 믿는 데 도움은 줄 수 있지만, 믿음 자체를 주는 것은 성경이다. 부자와 거지 비유(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이 기적보다 더 우선적이라고 강조하고 계시다(눅 16:31). 성경은 신뢰할 만한 책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1145년에 김부식이 기록한 '삼국사기'를 통하여 기록 당시보다 1200년 전의 고조선의 역사나 삼국시대의 역사를 믿는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 불과 20여년 내지 50년 안에 기록한 책이니 얼마나 더 신뢰할 만한가.
 
성경은 얇은 책이다. 1500년 역사를 이토록 간결하게 응축할 수 있을까?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약 40명의 저자들이 이토록 통일성 있게 기록할 수 있을까? 훈련된 낭독자이면 약 52시간 만에 성경을 낭독할 수 있다. 성경통독은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성경은 얇은 책이며, 성경은 읽을 가치가 있는 최고의 책이다. 성경통독을 못해봤다면 지금 이 시간 통독을 결심하자.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귀며,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동역자로 살아가자. 성경은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경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셔서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옵소서. 성령님, 어두운 영안과 귀를 열어주셔서 말씀의 기이함과 능력을 보고 듣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덕영 목사
/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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