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신앙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충렬 목사
2014년 08월 11일(월) 17:03

2차 대전 이후 현세대를 '대화의 시대'라고 한다. 나라 간의 문제를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지난 세기에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키신저를 보내어 중국과 대화의 장을 연 것에 대해 그의 큰 공로로 치하한다. 최근에는 미국이 북한과의 막힌 문제를 풀려고 할 때는 전직대통령을 보내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화의 시대'에 철학적 배경을 제공한 사람은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였으며, 그의 저서 '나와 너'는 유명한 책이 되었다. 부버의 자서전으로는 '만남'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면서 어떤 사건들을 겪었다고 하지 않고 '만났다'고 하고 있다. 깊은 의미가 있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부버의 자서전 14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1914년에 그가 헤히라 목사와 만난 이야기이다. 헤히라 목사가 베를린에 있던 부버를 찾아와 같이 '시오니즘(유대인의 독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그를 역으로 전송하기 위해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도중에 '검은 길'이라는 별명이 붙은 석탄가루로 덮인 길에 이르렀을 때이다. 헤히라 목사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화제를 바꾸어 "우리에게 시온주의도 중요하지만 신앙은 더욱 중요합니다. 당신 하나님을 믿지요?" 질문하였다. 돌연한 질문에 당황한 부버는 "물론 믿습니다"하고 그 순간을 모면했고, 그들은 다시 걸으며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그러나 부버에게는 그때 받은 마음의 충격이 계속되었다. 헤히라 목사를 기차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당신 하나님을 믿습니까?"라고 한 그 질문이 가슴을 쳤다. 무언가 그의 대답은 거짓말이었다고 자책이 되었다.

다시 헤히라 목사가 질문을 하던 '검은 길'까지 왔을 때, 그는 우두커니 서서 더 걷지를 못하였다. 왜 나의 신앙은 이 모양인가? '믿느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믿는다'고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안믿는 것도 아니고 왜 나의 신앙은 이 모양인가? 내가 이 문제를 풀기까지는 여기서 움직이지 아니하리라 생각했다. 그때 홀연히 그의 마음을 스쳐지나간 것은 자신의 신앙이 유야무야(有耶無耶)한 것은 하나님을 제 3인칭으로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3인칭으로 알 분이 아니라 2인칭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인물이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제 2인칭으로 즉 내가 대화하는 대상자인 '당신'으로 대하여 우리의 신앙이 '만남의 신앙'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김충렬 / 목사ㆍ영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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