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고 싶다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고일호 목사
2014년 08월 11일(월) 17:02

해마다 여름이 되면 우리 교회는 교회학교 여름행사의 일환으로 고등부 학생들이 국토대행진 행사를 가진다.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종단하는 긴 여정도 아니다. 교회에서 임진각까지 2박3일 동안 낮에는 걷고, 밤에는 함께 모여서 각자의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영성훈련 식으로 진행된다. 가다가 너무 더우면 어디 시원한 그늘 밑에 들어가기도 하고, 적당한 카페를 찾아 머물다 가기도 한다. 이쯤되면 '웰빙행진'이라 여길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한 여름에 작열하는 태양을 등지고 걷다 보면 온 몸은 땀범벅이 된다. 마지막 날이 될 즈음에는 발이 퉁퉁 부어올라 신발을 신을 수도 없게 된다. 육체의 기력이 다 떨어지면 그 다음 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완주하려는 마음 사이의 수없는 갈등을 겪으면서 학생들은 마침내 목적지 임진각에 도달한다. 그 때의 그 뿌듯함을 생각해 보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자부심과 고통을 이기고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자신감, 그리고 낙오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고마움이 한 데 엉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더 이상 건너갈 수 없는 분단의 현장 앞에서 조국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간절히 기도한다.

국토대행진을 다녀온 학생들의 얼굴에는 전과 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당연할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그들은 이미 과거의 그들과는 다른 존재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진하는 발걸음은 단순한 행진이 아니다. 그 걸음은 자신의 삶과 신앙과 꿈을 위한 성찰의 시간이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위한 중보의 시간이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그 힘든 길들을 맨 몸으로 극복해 나가는 법을 배우는 인내의 시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달라진 것이다.

국토대행진을 마치고 온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목사가 되고 목회의 연륜이 많아져 갈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을 안다. 물론 조용히 떠날 수도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 말고 정말 머리는 하늘을 이고 두 다리는 땅을 딛고 걸어가 보고 싶다. 걸으면서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고 싶다. 발바닥이 부어 오르는 작은 고통 속에서라도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땀에 젖은 옷을 벗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고집과 자아도 함께 깨지고 싶다.

총회 훈련원이 조직되어 목회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한다는 공문이 왔다. 세미나실에서 늘상 듣는 강사들의 목회자 재교육 시간도 필요하지만 좀 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귀와 머리에 박히는 것이 모자란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 기간 동안 함께 모여 지극히 기본적인 것만 배낭에 담아 길을 떠나보면 어떨까? 일렬로 무리지어 조용히 걸어가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공문이 오길 기대해 본다.

"목회자 재교육 : 걸어서 임진각까지! 서울 시청 앞에서 출발. 가면서 깨지고 가면서 채우자!"

아 참, 나는 평발이다.

고일호 / 목사 ㆍ 영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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