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보다 먼저 배우는 것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2>

장순애 교수
2014년 08월 11일(월) 16:52

신호 대기 중이었다. 함께 교회로 가던 아이들에게 물었다. "학교랑 교회학교랑 뭐~가 다를까?" 순간, 재잘대던 아이들이 얼음! 짧은 정적을 깬 건 제일 어린 1학년 아이다. "음~ 공과공부요!" 뜻밖의 대답, 다시 물었다. "그래에? 그럼 '교회학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이제야 아이들이 너도 나도 입을 연다. "달란트 시장!", "게임!", "인형극!", "놀이동산!"

나는 참으로 처참했다.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위해 애써왔건만, 아이들은 아직도 교회학교를 그저 재미난 곳 정도로 생각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동안의 교육현장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성령께서는 세 가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첫째, 교회학교와 학교의 차이점이 '공과공부'라고 대답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나는 성경을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르치기보다는 주로 아브라함, 요나, 다윗, 삭개오의 이야기로 가르쳤다. 재미있게 들려주니 잘 견디고 있지만 사실 아이들은 매주 달라지는 외국어 인명과 지명으로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공과공부'(어떤 교회는 분반공부)라는 말은 매주 세 번씩 반복된다. 광고의 마지막 멘트, "이제 반별로 흩어져서 공과공부합시다!" 반별로 흩어지면 담임교사 왈, "얘들아, 우리 기도하고 공과공부 시작하자!". 공부를 마치면서 담임이 또 "얘들아, 기도하고 공과공부 마치자!". 어린이가 무엇을 쉽게 기억하겠는가? 매일 달라지는 발음도 어려운 외국인의 이름? 아니면 교사가 아브라함, 요나, 다윗 이야기를 맺으면서 슬쩍 전하는 '하나님?' 아니면, 주일마다 세 번씩 확실히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공과공부?'

둘째, '교회학교'와 연관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도 역시 내 탓이었다. 놀이동산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단 한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놀이동산에 보내주신다"라고 광고하지 않았다. 놀이동산에 가서도 "신나지?", "재밌지?", "맛있지?"만 물었을 뿐, 이 신나는 하루를 "누가 너에게 주셨냐?", "왜 그 분이 너에게 이것을 주셨냐?"고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놀이동산'만 기억하고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순전히 내 탓이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는 내 안에 좀 더 본질적인 잘못이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교회학교'하면 무엇이 기억나냐?"는 내 질문 속에는 교회학교 교육을 '하나님'의 교육으로 고백하기보다는 내가 기획하고 실행하는 '나'의 교육으로 주장하려는 잘못이 도사려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어차피 많이 못 묻고 딱 한가지를 물어야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느끼냐고 물었어야했다. 하나님만이 교회교육의 주인이요, 복음을 궁극목표로 고백하고 헌신하는 교회학교 교사라면…. 

장순애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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